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이 통과되려고 하니까 대법원이 예규 소동을 벌이고 있다. 훼방만 하다가 뒤늦게 움직이는 조희대 사법부의 행태는 국민 기만과 우롱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법원을 직격했다.
민주당이 23일 본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 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사법부가 자체 예규로 전담재판부 설치를 공식화하자 이를 비판한 것이다. 예규는 전담재판부 사건이라도 기존 사무분담 기준에 따라 무작위 배당토록 했다.
정 대표는 이어 “내란재판부 설치법 제정이 왜 필요한지 극명하게 증명했다”며 입법 강행 의사를 재확인했다. 민주당은 23일 본회의에서 내란재판부 설치법을 강행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이날 최고위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국회에서 통과될 내란재판부 설치법 내용을 대법원이 잘 살펴서 예규에 빈틈이 없도록 잘 준비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예규와 법률의 내용이 배치되면 법률의 효력이 우선하는 만큼, 법안 취지에 맞게 예규를 수정하라는 압박이다.
민주당에선 법안 처리 예고 시점(23일)을 불과 닷새 앞두고 자체 전담재판부 카드를 꺼낸 사법부를 향한 불쾌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예규 제정은 대법원의 꼼수다. 내란재판부 설치법이 통과되면 실행 가능한 예규를 만들어서 추진해야 할 것”(김병주 의원) “대법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입법부를 상대로 정치를 한다. 거의 싸우겠다고 나오는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다”(장철민 의원) 등의 반응이 나왔다.
당내 율사 출신 의원 등은 대법원이 제시한 전담재판부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 자체안과 민주당 입법안의 가장 큰 차이는 전담재판부 구성 방식이다. 민주당은 전국법관대표회의와 각급 판사회의에서 뽑은 추천위원이 전담재판부 후보자를 추천하는 인위적 방식이지만, 대법원은 서울고등법원에 있는 기존 형사부 가운데 무작위 배당을 해 해당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지정토록 했다. 민주당의 한 법사위원은 “신뢰받을 만한 사람을 확보해서 재판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대법원 안은 뭐가 변화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마나 한 소리로 쇼를 한 것”이라며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김승원 의원과 검사 출신인 양부남 의원 등은 이날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같은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범계 의원은 “지금도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사건은 무작위 배당한다.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김승원 의원은 “한마디로 평판사들의 추천권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보였다”며 “개선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 “기존 재판부에 무작위 배당을 하고 내란재판부라는 건 지록위마”(양부남 의원)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대법원 예규에 ‘영장전담법관’ 내용이 빠진 것도 문제 삼고 있다. 민주당의 내란재판부 설치법안에는 “영장전담법관 2명 이상을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 추천에 따라 임명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대법원 예규에는 이같은 내용이 없다. 이와 관련, 이용우 민주당 법률위원장은 전날 논평에서 “예규에는 전속관할, 영장전담법관, 재판 중계, 재판 기간 등에 관한 규정이 빠져 있어 실효성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승원 의원도 이날 “사법부는 지금 ‘수원 3인방’(정재욱·박정호·이정재 부장판사)을 계속 쓰겠다는 거 아니냐”며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으로 향하는 수사도 차단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대법원 자체안을 존중하라는 입장을 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민주당의 반헌법적 내란재판부 설치법 추진에 대응한 대법원의 고육지책으로 이해된다”며 “그럼에도 법안을 강행하는 건 ‘권력에도 서열이 있다’는 이재명식 세계관을 입법으로 관철하겠다는 발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