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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계엄 땐 1명, 尹 땐 4명…'그날의 분위기'가 기소 갈랐다

중앙일보

2025.12.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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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18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한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을 추가로 기소하면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더해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국무위원은 총 4명이 됐다. 45년 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이른바 ‘5·17 쿠데타’로 기소된 국무위원은 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 한명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역사학계, 법조계에선 두 계엄에서 국무위원의 발언권, 관여 정도가 현저히 달라 처벌 범위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 국무회의장엔 탱크, 군인 도열

이한빈 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중앙포토

중앙일보는 최근 전남대 5·18 연구소를 통해 신군부 계엄 확대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이한빈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1995년 12월 23일 검찰 조서를 확보했다.

조서에 따르면 1980년 5월 17일 오전 이 부총리는 총무처로부터 “저녁에 국무회의가 있으니 참석하라”고 통보받았다. 이어 같은 날 자신의 소재를 파악하는 연락을 3~4회 받곤 “전에 없는 일이라 이상했다”고 진술했다.

저녁에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에 도착한 이 부총리는 평소와 같은 현관이 아닌 서편 측문으로 안내받았다. 이 부총리는 “전에 없던 탱크가 두 대 배치돼 있고, 병사들이 저를 보고는 현관으로 못 가게 하고 중앙청 서쪽 옆에 내리게 했다”며 “지하도를 통해 1층, 2층을 거쳐 3층 회의실로 갔다”고 회상했다. 회의실 향하는 경로에도 착검한 총을 든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다. 이 부총리는 “복도에 약 1m 간격으로, 계단엔 층계마다 군인들이 총에 착검하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고 진술했다.
1980년 5월 17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비상국무회의장에 무장한 군인이 1~2m 간격으로 배치돼 있다. 신군부의 압력으로 결국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키로 결의했다. 중앙포토

회의장에 도착한 이 부총리는 분위기가 “전례 없는 가시적인 위압을 당하고 왔기 때문에 그야말로 침통하게 서로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고 기억했다. 참석자들이 모이자 주영복 장관은 “학원 사태 등을 수습하려면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게 불가피하다”며 “오늘 아침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열렸는데 거기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국무위원 중 발언한 유일한 사람은 김옥길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이었다고 한다. 김 장관이 “계엄을 확대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주 장관은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으로 계엄을 확대한다”고만 설명했다. 잠시 뒤 신현확 국무총리는 “다른 이의가 없으면 통과하겠습니다”라 한 뒤 안건을 통과시켰다. 회의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주도하고 5월 18일 광주 파견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에 관여한 것 관련 내란 혐의로 1996년 서울고법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중앙포토

당시 중앙청에 근무하던 직원들은 강제로 퇴거했고, 국무회의장에 설치된 전화선은 끊겨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상태였다. 이 부총리는 조사 도중 검사가 “계엄 확대가 군의 정치 개입을 반대하던 신 총리를 정책결정 계통에서 제거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냐”고 질문하자 “신 총리 평소 인품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회의장 주변엔 병사들이 배치돼 겁을 주고, 주 장관은 ‘이미 결의했으니 그대로 통과시켜라’ 는 취지로 말하는 등 안팎에서 겁을 주니 영문도 모르는 채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을 알면서 통과시키고 만 것”이라고 회상했다.



12·3 계엄 후 “선택의 여지 없었다”…판사 “할 말인가”

전남대 5·18 연구소 김희송 교수는 “당시 상황과 비교하면 12·3 계엄 당시 국무위원들은 영혼 없는 기회주의 공무원들”이라고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을 더 적극적으로 말릴 여건이 허락됐다는 것이다.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은 줄곧 “계엄에 반대했다”고 주장해왔으나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엔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를 위해 일어선 윤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끄덕여 동조하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이 계엄 문건을 검토하는 장면이 찍혔다. 이 전 장관은 웃는 모습도 포착됐다.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6일 한 전 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을) 할까, 말까 하는 토론이나 저희들의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일방 통보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이에 재판장은 “법적 책임을 떠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적절한가”라 따져 물었다.

지난 10월 13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재판에선 12·3 비상계엄 당시 대통령실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됐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퇴장하기 전 한 전 총리와 대화하다가 웃는 모습이 포착됐다. 법원cctv 캡처

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주도하고 5월 18일 광주 파견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에 관여한 것 관련 내란 혐의로 1996년 서울고법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특검은 이 사례를 감안해 지난달 26일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형을 구형했다.



김성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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