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손을 맞잡고 건배사를 했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한 고깃집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현직 당협위원장 모임 ‘이오회’ 송년회 자리에서다. 김 전 장관이 이날 건배사로 “우리는”을 선창하자 한 전 대표는 “하나다”로 호응했다. 이어 두 사람은 잔을 든 손을 엇갈리게 해 러브샷까지 이어갔다.
이 광경을 영상으로 본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AI(인공지능) 합성인 줄 알았다”고 놀라워했다.
김 전 장관과 한 전 대표는 지난 5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막판까지 각각 반탄(탄핵 반대)과 찬탄(탄핵 찬성)의 대표 주자로 대척점에 섰다. 김 전 장관이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엔 한 전 대표가 한동안 지원 유세에 나서지 않다가 공식 선거운동 시작 2주 뒤인 5월 26일에야 첫 지원 유세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당시 김 전 장관의 이름이 새겨진 공식 선거 유니폼 대신 국민의힘 로고와 기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은 한 전 대표를 보고 정치권에선 “둘 사이의 거리감이 여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좀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은 왜 당원 게시판 조사 재개 논란으로 한 전 대표와 장동혁 지도부의 갈등이 극에 달한 묘한 시점에 손을 맞잡았을까.
김 전 장관과 한 전 대표의 측근에 따르면, 두 사람의 17일 송년회 회동은 사전에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은 “한 전 대표가 오는지 모르고 가셨다. 모임 장소가 관악구라 자택에서도 가까워 들르신 걸로 안다”고 했고, 한 전 대표의 측근도 “이오회 모임에는 가끔씩 참석하셨다. 제가 아는 것만 세 번”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이날 한 전 대표의 손을 맞잡고 “국가적으로나 우리 당으로서나 아주 귀한 보배”라며 “이런 보배를 자른다고 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힘에서 당원 게시판 의혹을 고리로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절차에 돌입한 걸 비판한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이어 “내년 선거 때까지 우리가 하나로 뭉쳐야한다”고 강조했다. 한 시간여 뒤 김 전 장관이 다시 나와 “뭉쳐야 산다”며 건배사를 할 때도 한 전 대표와 손을 맞잡은 상태였다.
대선 때만 해도 서먹했던 김 전 장관과 한 전 대표의 관계는 지난 8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조금씩 개선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 불출마했고 선거 구도는 김문수·장동혁 후보 2파전이었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결선투표를 앞두고 “최악을 피하게 해 주시라”(8월 23일)는 메시지를 냈는데 당 안팎에선 “한 전 대표가 김 전 장관을 지지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장 대표도 토론회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사실상 김 후보 지지”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김 전 장관은 지난 8월 국민의힘 당 대표 본경선 3차 토론회에서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동훈 전 대표와 전한길씨 중 누구를 공천할 거냐’는 질문에 “한 전 대표”라고 답하기도 했다. 당시 장 대표는 같은 질문에 전씨를 택했다.
지난 17일 이오회 송년회에서도 김 전 장관은 한 전 대표에게 “당이 큰일이다. 싸울 수 있는 사람, 싸움꾼들은 다 같이 싸워야지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한 전 대표에게 “이 상황이면 당은 정말 큰일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장관과 한 전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 이후 따로 회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안부 문자 등을 계속 주고받으며 소통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장관은 전당대회 이후 당 안팎 인사들을 만나며 물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 측근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지난 10월 말엔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의 면회를 다녀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9월 검찰이 손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당시에도 “명백한 정치보복이자 종교탄압”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김 전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독립외교 40년: 이승만의 외로운 투쟁’ 시사회에 참석해 “지금 나라가, 특히 법치가 무너지고 있고 도둑떼들이 나타나 검찰청을 폐지했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은 “전당대회 이후 특별히 정치적인 활동만 한 건 아니다. 산악회도 다니고, 등산도 하면서 당 안팎의 분들과 모임을 가져온 걸로 안다”고 했다. 또 다른 측근은 “최근에는 당 상황도 많이 걱정하고,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꼭 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며 “어떻게든 함께 뭉쳐 싸워야한다는 말씀을 매우 자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