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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아버지는 어디에…아파트 지하 2층 '충격의 CCTV'

중앙일보

2025.12.20 13:00 2025.12.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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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없는 살인


붉은 흔적이 인도한 길

어느 5월 끝자락의 휴일.
길정훈(가명)씨는 모임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했다.
늘 그랬듯 지하 2층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무심히 걸음을 옮겼다.

자정이 지난 아파트 주차장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 주차장 바닥에 번졌다.

주차장 바닥에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엔 불빛에 반사된 얼룩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몸을 굽히는 순간,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었다.
피!
선명한 핏자국이 주차장 바닥 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잠시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던 길정훈씨는 숨을 고르고 조심스레 그 자국을 따라 걸었다. 핏자국은 기계실 앞에서 한 번 끊긴 듯하더니, 방향을 틀어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서둘러 아파트 경비원을 찾았다.

두 사람은 손전등을 들고 그 자국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두 사람의 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핏자국이 향한 마지막 지점은, 평소라면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곳.

지하 2층 한쪽 구석, 기계실 옆 집수정이었다.
두 사람은 떨리는 손으로 낡은 철제 덮개를 열었다.

그 아래, 반쯤 고인 물 속에 헝겊에 덮여 있는 무언가가 떠 있었다.

헝겊을 살짝 걷어내자 반쯤 잠긴 사람의 상체와 손가락이 드러났다.

" 으악!!!!!! "

두 사람의 비명이 늦은 밤 아파트 지하에 울려 퍼졌다.

충격과 공포에 숨이 막힌 그들은 급히 자리를 벗어나며 112에 신고했다.

“여기 ○○아파트인데요… 사람이 죽어 있어요. 주차를 했는데 핏길이 보이길래…. 지하 집수정에… 있어요.”

신고 시각은 새벽 0시46분.

강력팀은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지하2층 집수정.

물 위로 반쯤 떠오른 성인 남성의 나체 시신이 보였다.

육안으로도 사망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섬뜩했던 건, 얼굴을 여러 겹으로 감고 있는 청테이프였다.

그 너머로 칼자국과 훼손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피로 얼룩진 손가락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언가를 붙잡으려던 듯 굳어 있었다.

형사들은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현장 전체가 피와 공포, 그리고 무언의 절규로 가득했다.

일러스트 미드저니, 이경희 기자

곧바로 현장을 통제하고, 감식을 시작하면서 시신을 물속에서 건져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소지품 등 단서는 없었다.

무언가를 숨기려 한 흔적만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흔적의 끝, 방 안의 남자

형사들은 지하 2층 바닥에 남겨진 핏자국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핏자국은 길고도 또렷했다.

마치 우리를 어딘가로 안내하는 듯, 지하 집수정에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이어져 있었다.

비상계단을 통해 한 계단씩 오르며, 각 층의 엘리베이터 앞을 확인해 나갔다.

6층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르자 고참 김 형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여기, 피를 닦은 흔적이 있습니다. "

눈썰미 좋은 그의 말을 듣고 살펴보니, 6층의 복도 벽과 바닥에 닦인 듯한 희미한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609호 현관문 앞에서 멈췄다.


형사들은 아파트 CCTV와 지하 주차장의 차량 블랙박스를 분석했다.

00시08분쯤, 청색 러닝셔츠를 입은 젊은 남성이 1층 중앙 현관과 엘리베이터 CCTV를 청테이프로 붙여 가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어 00시18분.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같은 인물이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끌고 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경비원에게 영상을 보여주자, 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 609호 아들인데요. "


용의자는 서른 살의 홍준기(가명).

피해자는 그의 아버지 홍형구(가명, 69세)로 확인됐다.

홍준기의 어머니 소재가 불확실했다.

혹시 집 안에 함께 있다면, 추가 범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즉시 119 구조대에 협조를 요청했다.


베란다 아래 화단에는 에어매트가 깔렸고, 형사들은 조용히 문 앞에서 대기했다.

순간을 노려 문을 강제 개방했다.

형사들은 일제히 고함을 치며 진입했다.

" 경찰이다. 움직이지 마. 가만히 있어 "


현관 옆 작은방 침대에 홍준기가 어깨를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우리를 향한 그의 눈빛엔 놀람도, 긴장도 없었다.

" 지하에… 아버지를 두었어요. 제가… 했어요. "


형사들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 홍준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말했다.

목소리는 평온했고, 표정에는 죄책감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다행히 집 안에 그의 어머니는 없었다.

말 없는 방, 조각난 고백
일러스트 미드저니, 이경희 기자
그는 범행의 모든 흔적을 방 안에 모은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방 안 구석에는 줄무늬 셔츠와 짙은 청색 러닝셔츠, 찢긴 청테이프 조각, 구겨진 비닐봉지, 피 묻은 슬리퍼, 사용된 물티슈가 흩어져 있었다.

한쪽엔 크고 작은 흉기 두 점, 혈흔이 스민 휴지 뭉치들이 비닐에 감싸져 놓여 있었다.


범행이 벌어졌던 화장실과 거실은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홍준기는 곧바로 경찰서로 연행됐다.

친형과 함께 조사실에 앉은 그는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질문을 던지자,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 어제 아침부터 경찰관이 올 때까지 집에만 있었어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 누군가 집에 찾아왔고, 저는 그 사람을 본 적도 없어요. "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이었다.

방 안에서 발견된 범행 도구, 그가 입고 있던 옷과 신발, 청테이프를 붙이는 장면이 담긴 CCTV, 시신을 끌고 가는 영상, 그리고 혈흔 감식 결과까지 제시했지만 그는 끝내 부인했다.

그의 얼굴엔 감정의 파동이 전혀 없었다.

가끔 새어 나오는 미소는 섬뜩했고, 죄책감이 닿지 않는 차갑고 단단한 벽처럼 느껴졌다.


그때 마침 제주도에 있던 그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어머니는 남편의 사망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끝내 아들을 걱정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뒤 진행된 두 번째 조사.

" 형사님들께 사실대로 말해. "

어머니의 조용한 설득에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계속)


어머니는 남편이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왜 그런 끔찍한 짓을 벌였을까. 그리고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뭘 잡으려 했을까.
아들이 아버지 얼굴에 청테이프를 칭칭 감은 이유를 말하자 모두가 경악했다.
그 부자의 말 못 할 사연,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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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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