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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에만 쓰이지 않는다…블록체인으로 무역 서류 없애겠다는 이곳 [비크닉]

중앙일보

2025.12.20 16:00 2025.12.2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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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피셜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은 가상화폐나 코인, 혹은 하루에도 급등락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먼저 떠올려요. 기술 자체보다는 투자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일 베를린에 본사를 둔 IOTA 재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예상과는 다른 단어들이 나옵니다. 통관, 무역 서류, 항만, 세관, 공급망, 정부 시스템 같은 것들이죠.

2015년 출범한 IOTA는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중앙 서버 없이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거래 기록을 공유하고 동기화하며 관리하는 기술)을 활용해 무역 절차와 서류 전송 과정을 디지털로 연결하는 인프라를 만들었어요. 애초부터 ‘코인으로 뭘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현실 경제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게 뭘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으니까요. 이들이 주목한 건 글로벌 무역이었습니다.

2015년 출범한 IOTA는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무역·공급망 등 실물 경제를 위한 공공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사진 IOTA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공급망이 점점 복잡해지다 보니 국경을 넘는 무역의 비효율은 더 크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종이 서류에 의존하고, 통관·검역·결제 절차가 국경마다 끊기면서 시간과 비용이 쌓이는 구조예요. IOTA 재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경제포럼(WEF), 전 영국 총리가 설립한 비영리 싱크탱크 ‘토니 블레어 글로벌 변화 연구소’ 등과 함께 트윈 파운데이션(TWIN Foundation, 이하 TWIN) 설립에 참여했습니다. TWIN은 통관·물류·무역 서류가 실제로 오가는 공공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IOTA 네트워크 기술을 활용하고 있어요. 이미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항만과 세관, 물류 현장에서 관련 시스템이 실제로 시험·운영되고 있죠.

이제 IOTA의 시선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비크닉은 파트너십 논의를 위해 한국을 찾은 IOTA 공동 창립자 도미닉 쉬너(Dominik Schiener)를 만났습니다. 그는 10년 넘게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활동해온 기술 기업가로, 현재는 국경을 넘는 무역과 새로운 디지털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 확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비크닉은 쉬너에게 “블록체인은 어디에 써야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부터, 무역과 공급망 현장에서의 실제 활용 사례, 그리고 다음 무대로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까지 차례로 물었습니다.

IOTA 공동 창립자이자 IOTA 재단(IOTA Foundation) 이사회 의장 도미닉 쉬너. 사진 IOTA


처음부터 ‘실물 경제’를 바라본 이유
IOTA는 시작부터 투자나 암호화폐가 아닌 ‘실물 경제(Real Economy)’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독자적인 기술과 비영리 재단의 철학을 바탕으로, 공공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Q.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아직도 투자나 코인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IOTA는 왜 전혀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나요.
A. 저희는 처음부터 ‘현실 경제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게 뭘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그 답이 무역과 공급망이었죠. 그래서 실물 경제를 움직이는 공공 디지털 인프라로 설계해왔습니다. 지난 10년 가까이 정부와 국제기구, 기업들과 함께 무역, 공급망, 디지털 신원, 결제 같은 영역에서 실제 문제를 풀어왔고요.

Q. IOTA는 ‘수수료 없는 네트워크’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A. 블록체인을 쓸 때 생기는 경제적 마찰을 줄이고 싶었어요. 특히 무역이나 공급망처럼 거래가 많은 영역에서는 수수료가 큰 장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IOTA는 실사용에 맞춘 새로운 기본 네트워크로 전환하면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만 받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플랫폼이나 기관이 대신 부담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렇게 해서 실사용에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면서도, 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TWIN에는 IOTA를 비롯해 세계경제포럼(WEF), 토니 블레어 글로벌 변화 연구소, 아프리카 무역 촉진 비영리기구 트레이드마크 아프리카 등 글로벌 정책·무역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진 IOTA


종이 서류로 돌아가던 무역을 바꾸는 실험


Q. 글로벌 무역은 정부와 세관, 항만, 물류, 금융기관까지 여러 주체가 동시에 관여합니다. 이런 구조에서 TWIN을 재단 형태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글로벌 무역은 한 기업이나 한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정부와 세관, 항만·물류 회사, 금융기관 등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죠. 그래서 특정 기업이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중립적인 구조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TWIN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범한 비영리 재단이에요. 무역·정책 분야의 기관들이 함께 참여해 공공과 민간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무역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프리카를 위한 디지털 접근 및 공공 무역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Q. 특히 아프리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무역 인프라가 중요할 것 같아요.
A. 무역의 비효율은 전 세계적인 문제지만 아프리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그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종이 서류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국경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통관 지연과 비용 증가가 자주 발생하죠. 특히 소규모 농가나 중소 수출업체처럼, 국경을 넘는 순간 바로 비용과 지연을 떠안게 되는 이들은 글로벌 시장에 접근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TWIN의 IOTA 네트워크는 무역 관련 데이터를 한 번만 디지털로 입력하면, 세관·물류·금융 등 여러 기관이 이를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요.

Q. 유럽에서도 실제 무역에 활용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A.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과 네덜란드입니다. 영국에서는 항만과 세관, 물류 회사들이 TWIN의 IOTA 네트워크를 활용해 무역 데이터를 디지털로 공유하고 있어요. 영국 항만의 약 75%를 아우르는 데이터 커뮤니티 시스템과 연계돼 있죠. 이를 통해 통관 과정이 훨씬 간소화됐고, 서류 처리 시간과 비용, 오류가 크게 줄었어요. 모든 참여자가 같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중복 작업이나 정보 불일치 문제도 줄었고요. 네덜란드에서는 케냐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로테르담 항을 거쳐 영국으로 이동하는 공급망 전체를 IOTA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있어요. 생산자부터 수출입 업체, 물류 회사까지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추적 가능성과 신뢰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TWIN 플랫폼 실제 화면. 로그인 후 개별 화물의 서류와 통관 상태, 전체 무역 흐름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사진 IOTA


다음 무대는 한국 아시아로 향하는 IOTA의 시선
유럽과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IOTA의 시선은 이제 한국으로 향하고 있어요. 이들은 이미 고도화된 한국의 무역 디지털 인프라 위에서, 국경을 넘는 무역을 연결하는 자신들의 역할을 찾고 있습니다.

Q. IOTA의 경험과 모델이 한국 기업이나 한국의 무역 환경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요.
A. 한국은 이미 무역 디지털화 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예요. 정부와 항만 당국이 KTNET(한국무역정보통신)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단일 창구 시스템을 운영하며, 수출입과 통관 절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죠. 우리는 이런 한국의 시스템을 대체하려는 게 아니라, 국경을 넘는 순간에도 무역 데이터와 절차가 끊기지 않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통관과 물류 과정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요.

Q. 한국 기업이나 기관과의 구체적인 파트너십은 언제, 어떤 형태로 공개될 예정인가요.
A. 현재는 물류 기업과 항만 당국, 일부 정부 기관,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파트너십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TWIN은 무역 전반을 아우르는 인프라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영향력이 큰 주체들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앞으로는 원화 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같은 디지털 결제 수단과 연계해, 무역 결제나 관세 납부, 무역 금융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파트너 이름을 지금 공개할 수는 없지만, 내년 1분기에는 한국과 관련된 의미 있는 발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IOTA 공동 창립자이자 IOTA 재단(IOTA Foundation) 이사회 의장 도미닉 쉬너. 사진 IOTA

Q. 앞으로 5년 안에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지금의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무역 시스템을 대체하는 글로벌 공공 디지털 인프라로 자리 잡는 것입니다. 기업과 정부, 금융기관들이 매일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역 데이터를 안전하게 교환하고, 거래 비용을 눈에 띄게 낮출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거죠. 미래의 무역은 점점 국경의 의미가 옅어지는 환경으로 바뀔 것입니다. 무역이 대기업이나 일부 선진국만의 영역이 아니라, 전 세계의 소규모 기업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인 시스템이 되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이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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