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하락(고환율)이 장기간 이어지는 가운데 외국인이 달러를 들여와 국내 공장 설립이나 기업 인수에 나서는 직접투자(FDI) 유치가 큰 폭으로 줄었다.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는 비율도 낮아지면서,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 부담이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1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3분기 FDI 유치실적(신고 기준)은 75억7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3.1%(22억7700만) 감소했다. 올해 1~3분기 누적 FDI는 206억7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45억1200만 달러(17.9%) 감소했다.
FDI 신고액은 올해 1분기 이후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감소폭도 1분기 -9.2%, 2분기 -19.1%, 3분기 -23.1% 등으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FDI 신고액에는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공장 설립이나 한국 기업의 경영권 취득 등이 포함되는데, 이 과정에서 달러를 들여와 원화로 환전하기 때문에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공급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0월 관련 통계를 발표하며 FDI 감소 원인을 상반기 국내 정치 상황 불안과 미국 통상정책 불확실성 등을 꼽았다. 이밖에 노동법 등 이재명 정부 들어 추진된 각종 입법도 외국인들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 주한외국상의 회장단은 지난 9월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 등 노조법 개정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수출을 하고 대금을 달러로 받는 비율도 낮아졌다. 한은의 국제수지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수출대금이 달러로 결제된 비중은 전체 수출액의 83.5%로 1년 전보다 0.9%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원화 결제는 0.9%포인트 높아진 3.5%로 집계됐다. 수출 대금의 달러 결제 비중 하락은 시장에 달러 공급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유도해 국내 달러 공급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우선 외국인이 국내 증권사 계좌를 별도로 개설하지 않아도 현지 증권사를 통해 한국 주식과 채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외국인 통합계좌’ 제도의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전문투자자’ 제도에 대한 안내도 명확히 한다. 해외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전문투자자로 인정돼 외환파생상품 거래 시 증빙 서류를 사전에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국내 수출 기업들을 상대로는 쌓아둔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라는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8일 주요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외국에서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투자할 계획도 없는데 과도하게 달러를 유보하면 ‘나중에 환차익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작은 이익을 쫓기보다 본업에 충실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