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이번 주 대규모로 환 헤지에 나설 전망이다. 환율 널뛰기가 심한 연말을 맞아 ‘달러 큰손’인 국민연금이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인데, 외환시장 불안을 가라앉히긴 쉽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값은 지난 20일 야간 거래에서 1478.0원에 마감하며, 1480원대에 바짝 다가섰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과 맞먹는 원화 약세(환율은 상승)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연말 종가가 정해지는 30일을 일주일여 앞두고 국민연금이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설 것이란 시장 관측이 나온다.
환 헤지는 해외 투자 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대비해 특정 환율로 미리 고정해두는 조치다. 국민연금이 한국은행과의 외환스와프를 통해 조달한 달러를 가지고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서면 원화 약세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지난 1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올해 말 종료 예정이던 한은과 외환스와프 계약을 1년 연장하기로 했다. 규모는 650억 달러다. 한은은 외환스와프 확대에 따른 외환보유액 급감을 대비하기 위해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외화예금 초과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말 환율에 대한 전문가의 전망은 엇갈린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강력한 정부 조치가 쌓여있기 때문에 연말 종가는 1450원 수준으로 안정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그동안 환율 상승(원화값 하락)은 투기 세력보단 국내 경제 주체들의 자발적인 해외 투자 쏠림 탓이 컸다”며 “당장 연말 환율은 1480원을 겨우 방어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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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필요한데…외국인 직접투자 크게 줄어
이런 가운데 외국인이 달러를 들여와 국내 공장 설립이나 기업 인수에 나서는 직접투자(FDI) 유치가 큰 폭으로 줄었다.
이날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3분기 FDI 유치실적(신고 기준)은 75억7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3.1%(22억7700만 달러) 감소했다. 올해 1~3분기 누적 FDI는 206억7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45억1200만 달러(17.9%) 감소했다.
FDI 신고액은 올해 1분기 이후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감소폭도 1분기 9.2%, 2분기 19.1%, 3분기 23.1% 등으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FDI 신고액에는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공장 설립이나 한국 기업의 경영권 취득 등이 포함되는데, 이 과정에서 달러를 들여와 원화로 환전한다. 올해 들어 FDI를 통한 달러 공급이 그만큼 예전만 못하다는 의미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0월 관련 통계를 발표하며 FDI 감소 원인을 상반기 국내 정치 상황 불안과 미국 통상정책 불확실성 등을 꼽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추진된 각종 노동 입법도 외국인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 주한외국상의 회장단은 지난 9월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등 노조법 개정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수출을 하고 대금을 달러로 받는 비율도 낮아졌다. 한은의 국제수지 통계를 보면 올해 2분기 수출 대금이 달러로 결제된 비중은 전체 수출액의 83.5%로 1년 전보다 0.9%포인트 하락했다. 수출 대금의 달러 결제 비중 하락은 시장에 달러 공급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