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매우 안정된 천재(very stable genius)”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하버드대 주디스 허먼과 동료 정신과 의사들은 그가 ‘자기애성 인격장애(NPD·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를 가졌다고 판정했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무시하는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그의 황당한 정책에 반대하는 ‘어른의 축’ 인사들은 줄줄이 보따리를 쌌다. 그를 비판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러시아 게이트’ 수사 관계자들은 지금도 보복수사를 받고 있다.
자기중심적 트럼프도 반대 수용
공개 비판한 비서실장 계속 신임
윤석열, 한동훈 직언에 분노…몰락
직언자 안 보이는 이 대통령 위험
그런데 냉철한 ‘얼음공주(ice baby)’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이 배니티페어와 가진 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트럼프의 반응은 의사들의 예상과 달랐다. 와일스는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발표하기 전 “좋은 정책인지에 대해 엄청난 의견 불일치가 있었다”며 “밴스 부통령과 함께 속도를 늦추려고 시도했다”고 털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政敵) 기소에 대해서는 “(취임) 90일이 지나기 전에 보복을 끝내기로 느슨하게 의견 일치를 봤다”고 했다. 와일스는 트럼프가 “알코올 중독자의 성격을 가졌다”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시각으로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분노하지 않았고 “그녀는 훌륭하게 일하고 있다”며 계속 신임했다.
트럼프가 올해 참모의 반대로 자신의 뜻을 접은 사례도 있었다. 파월 연준 의장을 ‘실패자’로 모욕하면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반대하자 물러섰다. 민주당 상원의원을 반역 혐의로 처벌하려다 공화당 소속 상원 군사위원장이 제지하자 포기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관세에 대해 “부패의 온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지만 트럼프의 실용감각은 인정한다. “미친 것 같은 정책을 내놨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금방 바꾼다”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멍청한 정책을 고집하는 민주당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디 언포퓰리스트 편집장인 시카 달미아는 “트럼프의 이념적 확고함 부족과 거래적인 통치 방식이 공존 불가능해 보이는 마가(MAGA) 파벌들을 결속시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했다. 허술한 것 같지만 영리하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부처 업무보고 발언이 생중계로 알려지면서 구설에 올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는 ‘책갈피 외화 반출 전수조사’를 둘러싸고 “천하의 도둑놈 심보”라며 설전을 벌였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겐 학계에서 위서(僞書)로 정리된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해 “문헌이 아니냐”고 물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을 상대로 한 공격적인 발언이었지만 감히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여권은 4심제, 내란전담특별재판소 설치, 대법관 증원, 법왜곡죄 신설, 검찰 해체를 사법개혁이라며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삼권분립 원칙을 위협하는 일이다.
대통령 가족과 측근 비리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 도입은 감감무소식이다. 새 정부 인사에 비선 실세가 관여하고 있다는데 너나없이 침묵하고 있다. 비판을 극도로 싫어하는 보스를 상대로 직언을 거듭하는 트럼프 참모들과 대비된다. 현실감각이 탁월한 실용 대통령을 상대로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이 경직된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지 이 대통령은 고민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슬이 퍼럴 때도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민심을 전달했다. 그는 “무수히 많은 비공식적 경로와 방식을 통해 김건희 여사와 의대 증원, R&D 예산 삭감, 명태균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고 했다. 윤석열은 그를 ‘빨갱이’로 불렀고, 군사령관들에게 “한동훈을 잡아오라.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했다. 그 오만과 독선의 비극적 결과가 12·3 불법 계엄이다. 이 대통령의 이너서클에는 한동훈처럼 단호하게 “노(No)”라고 할 사람이 없다. 대통령이 잘못을 성찰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면 계속 독주하게 된다. 내부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
대통령이 언로(言路)를 열면 국민이 편안해진다. 불완전한 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국정의 오류와 허점이 다양한 시각을 통해 발견되고 현실에 맞도록 수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선출된 황제’가 된 지 오래다. 그가 호승심(好勝心)이 앞서 상대를 향해 “천하의 도둑놈 심보”라고 쏘아붙이면 누구도 입을 열기 어렵다. ‘황제’ 한 사람이 만사를 결정하게 되고 공화(共和)의 정신은 소멸된다. 비극의 출발점이다. 와일스는 “트럼프가 항상 내 의견을 존중한다”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취임 6개월이 지난 이 대통령에게도 “야당과 그만 싸우고 통합의 길을 가자”고 직언하는 ‘얼음공주’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