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건 쉽지 않았지만, 그 경험이 타인을 이해하는 힘이 됐습니다.”
약 8개월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첫 임무를 마치고 지난 9일(현지시간) 지구로 귀환한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한국계 우주비행사 조니 김(41)은 19일 NASA 존슨우주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인 정체성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중앙일보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라며 정체성이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며 “많은 1·2세대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게 쉽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empathy)하는 힘을 길러줬고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배경은 그가 바라보는 국제 협력의 가치로도 이어졌다. 한국우주항공청 출범과 관련해 조니 김은 “매우 자랑스럽고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며 “NASA가 지금까지 주도해온 것처럼 나라들이 함께 협력할 때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라고 평가했다.
한식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출발 전 가족과 지인들이 김과 김치, 밥을 싸 줬는데, 우주정거장 메뉴에는 그런 음식이 전혀 없었다. 그걸 먹으며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정말 좋았다”고 미소를 띤 채 회상했다. 앞서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추장과 김치, 스팸과 햇반 등 한식을 먹는 모습을 공개해 한국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조니 김은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한국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미 해군에 입대해 네이비실 제3팀에서 복무하며 이라크 전쟁에도 두 차례 참여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열악한 전장 응급의료 현실을 목도하고 2012년 해군 의학외과국 장교 신분으로 하버드대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해 2016년 졸업 후 의사로 전향했다. 이후 2017년 NASA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그는 올해 4월부터 약 8개월간 ISS 72·73차 탐사대 비행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과학 연구와 기술 시연에 참여했다.
귀환 소감에 대해서는 지구의 감각을 다시 느끼는 기쁨을 강조했다. 그는 “다시 날씨를 느낄 수 있고 바람이 피부에 닿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성과로는 생명과학 분야 연구를 꼽았다. 그는 일본 실험 모듈 내 생명과학 글러브박스에서 진행한 ‘메이블(MABEL)’ 실험을 언급하며, 뼈 줄기세포를 배양해 뼈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지를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우주비행사 건강 관리뿐 아니라 지구의 골격·근육 질환 연구에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주 생활에 대해선 “지구에서 쉬운 일이 우주에서는 매우 어렵고, 지구에서 어려운 일이 우주에서는 아주 쉬운 경우가 많다”며 “물병을 내려놓는 간단한 행동조차 무중력 환경에선 쉽지 않은 반면 아주 무거운 물체도 손가락 하나로 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그리웠던 건 “가족”이라면서 아내와 아이들, 반려견을 언급했다. 동시에 “정말, 정말 그리웠던 것은 기술과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휴대폰이 그리웠다”며 웃었다.
이날 회견은 후배 우주비행사들을 향한 조언으로 마무리됐다. 조니 김은 “임무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라며 “경청, 리더십, 연민, 공감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