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인환 기자] 이상 ‘여자 단식 최강자’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안세영이 시즌 최종 무대에서 11번째 우승을 완성하자, 중국 현지는 “종목의 기준 자체를 바꾸려는 선수”라며 충격에 빠졌다.
안세영은 21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5 BWF 월드투어 파이널 여자 단식 결승에서 왕즈이를 상대로 세트 스코어 2-1(21-13, 18-21, 21-10) 승리를 거두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월드투어 파이널은 한 해 동안 월드투어 포인트 상위 8명만 출전하는 사실상의 ‘왕중왕전’. 시즌 최종 무대에서 안세영은 가장 완성도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번 우승으로 안세영은 2025시즌 국제대회 11번째 정상에 오르며 역대급 기록을 작성했다. 2019년 모모타 겐토가 세운 한 시즌 최다 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 수치다. 여기에 그동안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했던 월드투어 파이널까지 제패하며 명실상부 ‘올해의 선수’임을 증명했다.
1세트는 안세영의 흐름이었다. 초반 선취점을 내줬지만 곧바로 경기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안정적인 수비와 정확한 공격 전개로 랠리를 지배했고, 왕즈이의 반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긴 랠리에서 밀리는 장면도 있었지만, 전술을 조정한 뒤 연속 득점으로 흐름을 끌어왔다. 인터벌 이후 격차를 벌린 안세영은 침착하게 21-13으로 1세트를 마무리했다.
2세트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왕즈이가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으며 8-4까지 앞서 나갔다. 안세영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7-8까지 추격했고, 결국 11-10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그러나 흐름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리드를 주고받는 접전 끝에 왕즈이가 연속 득점으로 20점 고지에 먼저 도달했고, 안세영의 끈질긴 추격에도 2세트는 18-21로 내줬다.
승부는 마지막 3세트에서 갈렸다. 초반 팽팽한 흐름 속에서 4-4 동점이 만들어졌지만, 체력과 집중력에서 차이가 났다. 안세영은 예리한 헤어핀과 강력한 스매시로 8-5 리드를 잡았고, 침착한 운영으로 11-6, 5점 차로 인터벌을 맞았다. 이후 경기는 완전히 안세영 쪽으로 기울었다. 연속 득점으로 15-6까지 달아나며 승부의 추를 기울였다.
변수도 있었다. 안세영이 왼쪽 다리에 불편함을 호소하며 잠시 흐름이 끊겼다. 하지만 집중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점수는 17-7까지 벌어졌고, 단숨에 20-8 매치 포인트에 도달했다. 허벅지 통증으로 잠시 멈춰 섰던 안세영은 결국 21-10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월드투어 파이널 우승, 시즌 11번째 정상, 그리고 한 시즌 최다 우승 타이 기록. 숫자와 무대 모두가 안세영의 2025년을 설명한다. 시즌의 마지막에서 가장 강했고, 가장 완벽했다. 이제 이 해의 배드민턴을 이야기할 때, 이름은 안세영을 수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넷이즈'는 이번 2025 BWF 월드투어 파이널 여자 단식 결승 직후 안세영의 인터뷰와 행보를 집중 조명하며 “여자 단식의 한계를 스스로 허물겠다고 공개 선언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이매체는 “안세영은 단순히 여자 단식 최강자가 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며 “그녀의 목표는 기록이나 랭킹이 아니라 ‘플레이의 경지’ 그 자체”라고 분석했다.
특히 남자 단식 선수들의 플레이를 언급한 발언에 대해 “배드민턴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도발적이면서도 순수한 야망”이라고 표현했다.
넷이즈는 안세영이 인터뷰에서 남자 단식 경기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언급한 대목에 주목했다. “린단, 리총웨이, 시위치 같은 선수들의 샷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다. 안세영은 그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고 말한다”며 “이는 남녀 비교를 넘어, 배드민턴이라는 종목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라고 전했다.
결승전 내용 역시 그 근거로 제시됐다. 매체는 “결정적인 순간 왼쪽 허벅지에 쥐가 난 상황에서도 안세영은 수비에 숨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공격적인 스매시로 홈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은 왕즈이를 눌렀다”며 “이 장면은 이미 남자 단식 톱 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아우라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천위페이, 왕즈이, 한웨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이제 안세영의 시선은 이미 여자 단식을 벗어나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제기된 ‘남자 단식 스타들과의 이벤트 매치’ 아이디어 역시 소개됐다.
넷이즈는 “황당해 보이지만, 안세영이라는 이름이 있기에 상상 가능한 이야기”라면서 "안세영은 우승을 쌓는 선수가 아니라, 종목의 기준을 바꾸려는 선수다. 그녀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역대급 시즌 앞에서 중국 역시, 이제 안세영을 기존의 틀로는 바라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