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계를 뒤흔들 ‘판도라의 상자’로 불렸던 미성년자 성착취범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 수사 관련 문서가 19일과 20일(현지시간) 일부 공개됐다. 그러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관련 사진이 대거 공개된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관련 내용은 거의 없는 데다 일부 파일이 하루 만에 삭제돼, 자료가 선택적으로 공개되거나 검열을 거쳤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미 법무부는 지난 11월 상·하원이 가결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에 따라 공개 시한인 이날 관련 자료 일부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10만 페이지가 넘는 공개자료 중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촉구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이 다수 포함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과거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과 수영을 하거나, 얼굴이 가려진 여성의 허리 쪽에 팔을 두른 사진, 욕조에 함께 들어가 있는 사진 등이다. 법무부는 특히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온수 욕조 사진 중에서 얼굴이 가려진 사람은 엡스타인의 성범죄 피해자라고 밝혔다.
반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엡스타인과 교류했던 트럼프 대통령 관련 사진이나 문서는 거의 없었다. AP통신에 따르면 공개된 자료 가운데 최소 16개의 파일이 하루 만에 삭제됐는데, 이중엔 트럼프 부부와 엡스타인, 맥스웰이 함께 찍은 사진, 엡스타인과 트럼프 대통령이 찍힌 사진이 들어있는 서랍 사진 등이 포함됐다. CNN은 웹사이트에 공개돼 있던 일부 사진들이 사라졌고, 웹사이트에 공개된 일련번호 형태의 파일 중에서 해당 파일이 사라진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법무부는 삭제 배경을 묻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법무부가 공개한 문서는 전체 증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즉각 모든 파일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을 공동발의한 민주당 로 카나 하원의원은 “이번 공개 자료는 너무 많은 부분이 삭제돼 불완전하다”면서 “모든 가능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 측은 “이 사안은 클린턴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며 “사람들은 희생양이 아니라 답을 원한다”고 반발했다. 특히 사건의 희생자들은 공개된 자료가 대부분 가림 처리가 된 점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게시된 엡스타인 사건 관련 자료 가운데 파일 119개는 페이지 전체가 검은 칠로 완전히 가려졌다. 초기 피해자 중 한명으로 알려진 제스 마이클스는 “도대체 무엇을 보호하고 있나. 은폐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억만장자 엡스타인은 자신의 자택과 별장 등에서 미성년자 수십 명 등 여성 다수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체포됐다가 2019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정·재계와 문화계 유력 인사들이 포함된 성접대 리스트가 있다거나 사인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등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