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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뉴비 사이 휘둘리지 않았다"…네이버밴드 13년 '롱런' 비결

중앙일보

2025.12.21 15:00 2025.12.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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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진짜 필요한 기능만 남겨야 임팩트가 생겨요. "

서비스 종료가 일상인 앱 시장에서 13년간 생존해 온 네이버밴드를 만났습니다. 누적 다운로드 수 1.2억 건(2020년 기준). 미국에서는 전년 대비 20%, 일본에서는 연간 3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죠.

잘 나가는 밴드가 최근 대대적인 '리뉴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독특합니다.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게 아니라, 13년간 쌓인 기능을 과감히 삭제하고 있거든요. "지난 13년을 복기하며 본질과 멀어진 것들을 덜어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봤죠.

고객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은 네이버밴드의 '본질 집중 전략'을 파헤쳤습니다.

Part1. '서비스 폐지' 공지 없이 13년 이어온 밴드
"롱런의 핵심은 모임의 본질"

네이버 사옥에서 만난 네이버밴드 이동엽 리더와 황수경 서비스 리드. 사진 폴인, 송승훈


Q : 애플리케이션의 10년 생존, 쉽지 않다고요.

황수경(이하 '황'): IT 서비스만 20년 가까이 마케팅해 왔는데요, '서비스 폐지' 경험이 너무 많아요. 지금껏 지켜온 유일한 서비스가 밴드예요(웃음).

롱런의 이유는 하나예요.
'모임의 본질을 지켰다.'

잠시 IT 분야에서 나와 패션 매거진 마케팅을 경험한 적 있는데요. 트렌드가 하루 단위로 바뀌는 분야인데도, 독자가 원하는 건 결국 하나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옷이 나한테 잘 어울릴까?' 그 답이 서비스가 팔아야 할 본질이었던 거죠.


Q : 밴드의 본질은 무엇이었나요?

이동엽 (이하 '이'):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있어요. 바로 '리더'. '우리가 왜 모였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구심점인 리더가 정의하니까요. 리더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겨우 모은 유저도 금방 이탈해요. 13년간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잘 가닿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죠.


그래서 밴드는 사실 아주 수직적인 서비스예요. 리더가 채팅 권한을 통제하거나 방해 금지 시간을 걸 수도 있죠. 리더가 편해야 모임이 굴러가고, 리더가 만족하면 멤버 50명, 100명은 자연스럽게 따라와요.

본질을 지키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예요. 롱런에는 딜레마가 있거든요. 네이버 입사 전에는 10년 넘게 게임 사업을 했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문제에 매달렸어요.

고인물 유저에 맞추면 뉴비가 소외되고,
뉴비에 맞추면 고인물이 떠나는 상황.

휘둘리지 않으려면 계속 힘을 주고 있어야죠(웃음).


Q : 힘을 줘야 한다고요?

: 2가지에 매몰되는 순간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려워져요. ① 트렌드 ② 사업적 요구.

순간의 트렌드만 따르면 본질이 희석돼요. 짜장면 집인데 손님이 "칼국수 없냐"고 해서 칼국수를 만들면, 뭐 파는 가게인지 모르게 되잖아요. 플랫폼도 마찬가지에요. 사용자의 취향, 트렌드에만 맞춰 흔들리면 '뭘 하는 앱'인지 혼란스러워지죠.

때마다 생기는 사업적 요구도 잘 관리해야 해요. 지표를 방어해야 한다든지, 매출을 내야 한다든지, 전사적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든지…. 요구를 대응하는 데 급급하면 서비스 본질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으려고 3가지 로드맵을 만들었어요.

① 사용자의 문제, 페인포인트를 정확히 파악한다.
② 실제 사례를 '사용자의 언어'로 풀어내 콘텐츠를 만든다.
③ 해당 콘텐츠를 유사 타깃에 노출시키며 사용자를 모은다.

″트렌드나 요구도 중요하지만, 본질만큼은 흔들리면 안 돼요″ 사진 폴인, 송승훈

Part2. 네이버밴드의 성장 로드맵 3단계
"지켜야 할 본질, 유저의 말에 숨어있다"


Q : 진짜 페인포인트, 어떻게 파악했나요?

: 가장 중요한 건 사용자 인터뷰예요. 학원부터 반찬 가게,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분들까지, 모든 유형의 모임·그룹이 밴드에 들어와 있는데요. 헤비 유저들을 직접 만나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요.

'왜 밴드를 사용하게 되셨어요?'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잘 쓰는 기능, 더 필요한 기능이 있나요?'

최대한 많이 만나려고 해요. 같은 기능을 쓰더라도, 모임의 속성에 따라 활용 방법이 달라져서요. 인터뷰할 때마다 너무 새로운 걸 배웁니다(웃음).


Q : 기억에 남는 인터뷰도 있나요?

: 미국에서는 특히 치어리더 팀이 밴드를 많이 썼어요. 직접 만나 들어보니 영상 공유가 쉽다는 게 핵심이었어요. 안무 동작을 찍어서 각자 혼자서도 연습할 수 있게끔 비디오로 공유했던 거죠. 원래는 이메일로 공유하다 보니 속도, 용량 문제가 있었는데 그걸 해결한 거예요. 덕분에 미국 시장에 확실한 어필 포인트를 잡을 수 있었죠.

일정을 확정했을 때 참석 여부를 물을 수 있는 RSVP 기능은 인터뷰 이후에 만든 기능이에요. 미국의 마칭밴드(취주악단)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악기가 크고, 운전을 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디테일한 기능은 VOC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아요.

또, 이렇게 모은 사용자의 언어와 사례를 통해 확산용 콘텐츠도 만들고 있고요.


Q : 왜 하필 콘텐츠인가요?

: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했어요.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은 많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는 단점을 해결해야 했고요. 밴드가 실질적으로 불편한 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강조해야 했죠. 그러려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는 부족해요.

" 기능만 설명하면 안 되겠다.사용자의 '진짜 이야기'를 빌리자. "


Q : 고객의 말을 빌린다고요?

: 2가지를 비교하면 더 명확할 것 같아요.

폴인

고객이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눈에 확 들어오죠? 유저의 보이스로 밴드를 소개하면 훨씬 설득력이 커져요. 최근에는 업무용으로 밴드를 사용하시는 분들을 만났는데, 유사한 페인포인트를 가진 타깃에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Q : 업무용 앱은 경쟁자가 너무 쟁쟁하지 않나요?

: 기존 업무용 도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더라고요.

① 일방향 소통이 필요한 경우
② 부담 없이 합류·탈퇴해야 하는 경우

오피스 기반의 앱들은 쌍방향 소통을 전제해요.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발전시키는 과정이 주가 되는 건데요. 프랜차이즈 카페나 영화관, 혹은 건축이나 인테리어 분야 같은 현장직은 정확한 지시를 주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그때는 밴드처럼 리더가 확실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게 낫죠. 또 메일 주소나 사번이 없어도 쉽게 가입하고 탈퇴할 수 있고요.


Q : 사용자를 통해 접근하니 문화나 소통 방식이 다른 글로벌에서도 잘 정착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 맞아요. 글로벌은 낯선 시장이니까 혼자 파기엔 한계가 있었거든요. 현지인이 아니라면 파악하기 힘든 변화도 빠르게 포착할 수 있었죠.

유저들의 실제 서비스 활용 사례. 사진 네이버밴드


Q : 어떤 변화를 포착하셨나요?

: 일본 현지에서는 얼마 전까지 CS 문의를 직접 받았는데요. 생각보다 디지털 전환이 빠르다는 인사이트를 얻었어요. 전혀 생각지 않았던 그룹에서도 밴드 도입 문의가 왔거든요. 보수적인 지자체나 공공기관 등에서요.

물론 일본의 점조직 문화 때문에 아직 지역 소도시에는 밴드가 퍼지지 않았는데요. 이미 사용하고 계신 유저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다양한 곳으로 콘텐츠를 퍼트리고 있어요. "프린트 하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으니 한 번 써보세요"를 사용자가 직접 소개하죠.

사실 일본에서는 초기에 인터뷰이를 찾는 게 어려웠거든요. 바깥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게 낯선 문화라서요. 그래도 계속 신뢰를 쌓다 보니 용기를 내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웃음).


Q : 사용자가 다음 사용자를 부르는 식이네요.

: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 친해지면 슬쩍 물어보거든요. "너희 같은 사람들은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냐"고(웃음). 미국은 협회나 대회 같은 단체가 많아서, 그쪽을 통해서 다음 타깃을 발견할 수 있어요. 거기서 체험도 하고, 파트너십도 맺고요.

: 그래서 라포를 쌓는 게 너무 중요해요. 혼자 쓰는 서비스가 아니잖아요. 결국 리더가 '밴드 정말 좋으니까 같이 쓰자'고 이야기해야 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고요. 저희가 할 일은 유저가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도록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거예요.

이번 리뉴얼도 13년간 쌓은 인사이트에서 시작했어요. 유저들은 점점 가벼운 걸 원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지? 이 질문을 계속 던졌죠.

″혼자 쓰는 서비스가 아니잖아요. 유저가 직접 나서서 설득해도 실망시키지 않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저희 몫이죠.″ 사진 폴인, 송승훈

Part3. "본질 회복 필요했다"
더하기보다는 빼는 리뉴얼 택한 이유


Q : 어떻게 바뀌기로 결정했나요?

: 더하기보다는 빼기(웃음). 13년간 서비스가 이어져 오면서 이런저런 부가 기능들이 붙어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밴드의 본질은 '초대 기반'인데, 모르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퍼블릭 밴드'가 커졌어요. 퍼블릭 밴드를 발견할 수 있는 '찾기 탭'이나 '미션' 같은 체계가 생겼고요.

" 본질에 어긋나면 모두 덜어냈습니다. "

리더와 메시지 전달이라는 본질은 확실하잖아요. 그걸 사용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거죠.


Q : 무엇이 본질에 어긋나는 기능이라고 보셨나요?

: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UI 전반을 개선했어요.

광고도 그 중 하나였는데요. 원래는 메시지 팝업 사이에 광고가 끼어 들어가 있었어요. 얼핏 메시지로 착각할 수 있었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본질과 어긋났던 거예요. 가장 주목도가 높은 상단부에 전광판처럼 하나의 광고만 노출되도록 바꿨습니다. 광고의 수는 줄었는데, 오히려 매출은 늘었어요(웃음).

사용자들이 접속하자마자 속한 밴드, 최신 글을 확인할 수 있도록 홈 화면을 피드 형태로 개편했어요. 하나의 탭에서 읽지 않은 알림을 모아 볼 수 있어서 중요 소식을 놓치지 않을 수 있고요.글로벌 사용자의 30% 이상이 사용하는 일정 기능도 메인에 배치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메시지가 멤버들에게 잘 가닿을 수 있도록 알림 기능과 메인 화면 역시 개편했다. 접속 후 새 글을 모아볼 수 있고, 읽지 않은 알림을 모아볼 수 있다. 사진 폴인, 송승훈


Q : 전반적으로 심플해진 느낌이네요.

: 맞아요. 요즘 사용자들을 만나다 보니 비슷한 목소리가 많았어요. MBTI로 비유하면 J성향인 고객들은 밴드의 철저한 관리 체계를 좋아하시는데요. P 성향 유저한테는 오히려 그 기능들이 다 부담인 거예요. 풋볼 코치님이 기능 하나하나 익히지는 않을 테니까(웃음).

또 이게 최근 '모임'에 대한 니즈와도 맞닿아 있다고 봤고요.


Q : 어떤 점에서요?

: '나혼자 산다' 같은 예능 보고 충격 받았어요(웃음). 크루와 함께 러닝을 하는데,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각자 갈 길 가더라고요? 그게 요즘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이구나 싶었어요. 크게는 2가지 특징이 눈에 띕니다.

① 느슨한 연결감
② 확실한 목적성

: 오프라인 모임에서 쓰는 카피만 봐도 실감 나요. "찐으로 OO하실 분"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거든요. 목적을 달성하면 질척거리지 않고 헤어지는 거죠. 그런 니즈를 반영하는 게 저희에게 남은 숙제입니다. 리뉴얼도 지금 막 발을 뗀 단계고요.


Q : 계획 중인 새로운 기능이 있다면요?

: 2가지 방향을 잡았어요.

① 온보딩 절차를 줄이자.

과거 서비스들은 유저를 락인하려고 무거운 온보딩 프로세스를 썼어요. '우리가 남이가' 식이죠(웃음). 반면 지금의 소비자들은 복잡한 절차를 원하지 않아요. 링크 하나, 클릭 한 번으로도 가입하고, 사용이 끝나면 가볍게 폭파되는 서비스를 원합니다. 밴드도 그런 식의 변화를 계획하고 있어요.

② 나만의 공간이라는 감각을 주자.

트렌디하게 보일 수 있는 기능도 준비 중이에요. '우리가 꾸민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감각을 줄 수 있도록 커스터마이징을 넣으려 하거든요. 각자가 속한 커뮤니티의 색을 담아서 초대장도 보내고, 대문도 꾸밀 수 있도록요.

지금껏 지킨 본질을 토대로 조금씩 확장해 봐야죠. 계속 만나고 듣는다면, 더 많은 분들이 만족하지 않을까요?

″본질을 지키고 트렌드와 함께 성장하기. 그 숙제를 풀어나가려고요.″ 사진 폴인, 송승훈



김혜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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