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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부부 아니랄까봐

중앙일보

2025.12.22 07:58 2025.12.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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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숙 작가가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한 패션아트 55건(56점) 가운데 하나인 ‘학창의’(가로 2.4mx세로 1.76m). 조선 사대부가 입던 크기와 비례를 그대로 살렸다.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2018년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의상감독으로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고 이걸 자료로 남겨야겠다 생각했어요. 패션아트를 예술로 받아들여줄 공간을 찾다가 서울공예박물관을 소개받고 지난 2년간 기증과 전시를 함께 준비해왔죠.”(금기숙 작가)

철사와 구슬, 스팽글 등으로 촘촘히 엮은 ‘입을 수 없는 드레스’ ‘입어도 될 듯한 조각’ 수십점이 서울공예박물관(서울 종로구) 전시1동 3층을 채웠다. 한국에서 ‘패션아트(Fashion Art)’를 개념화하고 40년간 매진해 온 금기숙(73) 작가(유금와당박물관 공동관장)의 자식 같은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조선 사대부의 ‘학창의’(가로 2.4m×세로 1.76m) 등 55건(56점)은 박물관에 기증됐다. 총 평가액 13억1000만원에 이르는 작품들이다. 의상 스케치 등 아카이브 자료도 395점 넘겼다. 이를 기념해 23일부터 내년 3월15일까지 금기숙 기증특별전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이 열린다.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금 작가는 “옷이란 게 가장 화려한 의례복부터 실용적인 우주복까지 스펙트럼이 넓은데 산업과 예술의 경계에서 창의력을 실험해온 여정이었다”고 지난 40년을 돌아봤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Art to Wear(입는 예술)’ 운동을 1980년대 중반 우리 맥락으로 수용하면서 종이·직물부터 철사·구슬·노방·스팽글·폐소재 등을 활용해 일종의 설치미술이라 할 ‘입는 조각(Wearable Art)’으로 발전시켰다. 기본적으로 철사로 옷 형태를 잡은 뒤 수백 수천개의 장식 비즈를 꿰어 만든다. 전시작품 136건은 이브닝 드레스부터 철학자풍의 프록 코트, 혼례용 활옷과 궁중 당의(唐衣) 등 시대·지역을 두루 아우른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선수단 입장 때 피켓요원들이 실제 입었던 ‘눈꽃 요정’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전시작품들 가운데 유일하게 착용 목적으로 제작한 것들이다. 가장 무거운 건 7㎏에 달한다. 비교적 넓은 소매와 삼각 옷깃으로 한복 느낌을 살렸고, 머리에 쓰는 화관도 족두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밖에 시상요원과 태극기·오륜기 기수 등의 의상도 전통 문양과 맵시를 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피켓요원들이 이영희 선생님이 제작한 한복을 입었는데, 그걸 오마주하면서 한층 발전된 한국 패션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유창종·금기숙 부부.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이날 오후 전시 개막식에는 ‘기와 검사’로 유명한 남편 유창종(80) 전 서울중앙지검장(유금와당박물관 공동관장)도 참석했다. 유 관장은 검사 재직 시절인 1978년 충주 탑평리에서 연꽃무늬 수막새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옛 기와에 매료돼 수천점의 관련 유물을 모았다. 이 가운데 1875점을 200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고 현재도 상설전시 기증관에 전시돼 있다. 유 관장은 “나의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모았지만 기증으로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어 보람이고, 아내도 마찬가지 생각에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세계적으로 패션아트를 선도하는 한국에서 이 장르의 역사와 성취를 공공 자산으로 환원함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물려준다는 생각에 작품을 기증받게 됐다”고 밝혔다. 추후 서울 서초구에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가 완공되면 일부 상설 전시될 예정이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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