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등장하는 순간 숨이 멎었다. 탄탄한 체구, 성큼성큼 내딛는 무게감 있는 걸음, 또렷하게 울리는 목소리까지.
그는 넥타이에 조끼까지 단정하게 갖춰 입은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한 손엔 묵직한 서류 가방, 다른 한 손은 멀리서부터 환하게 흔들어 오는 제스처까지. 누가 봐도 ‘60대 젠틀맨 배우’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
깊이 팬 주름도 거의 없이, 검버섯이나 잡티도 눈에 띄지 않는 그의 피부에선 소위 ‘속광’까지 감돌았다. 맑은 안광이 나오는 눈빛을 보니 나이를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
취재진이 웅성거리는 분위기를 읽었는지, 그는 씩 웃으며 지갑을 꺼내 보였다.
“자, 확인해 봐유!”
주민등록증과 학생증이 탁하고 테이블 위에 놓였다.
앞자리 ‘34’, 올해 나이 91세. 세 살 된 증손주까지 둔 ‘증조할아버지’가 맞았다.
일명 ‘남자 이길여(가천대 총장)’로 통하는 ‘우주 최강 동안’ 외모의 주인공, 배재대 평생교육융합학부 24학번 박도규(91·이하 경칭 생략)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도규는 대학 새내기로 입학했던 지난해
4.5점 만점에 4.3점이란 경이로운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40살 차이 나는 젊은 동기들조차 엄두도 못 낼 학구열 만렙의 실력자였다.
〈100세의 행복2〉이번화는
세월을 비껴간 믿기 어려운 초동안의 비밀을 파헤쳤다. 막내딸뻘 동기에게 ‘오라버니’ 소리 듣는 멋쟁이 만학도, 박도규의 젊음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식습관·수면습관 등 생활 면면에 답이 있었다.
꿀피부 비밀, 로션 대신 바르는 화장품
지난달 20일, 대전 배재대에서 그를 만나 학교 앞 칼국숫집으로 향했다. 본인이 직접 운전하는 SUV 차량 문을 먼저 열어주는 손짓부터 이미 몸에 밴 매너가 느껴졌다.
식당 안에는 30~40살 어린 동기들이 그를 향해 “오라버니~” 하고 반갑게 부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섞여 앉은 박도규의 얼굴에선 세월의 흔적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얼굴에 뭐 바르세요?”
“20년 가까이 로션 한 번 안 발랐는데요?” “네?”
“대신 이거 하나만 7~8통씩 쟁여놔요. 얼굴과 전신은 물론 머리카락까지 다 발라요.” 깊은 주름도, 거뭇거뭇한 검버섯도 보이지 않는 꿀피부의 비결을 듣자마자 취재진은 무릎을 탁 쳤다.
(계속)
박도규는 지난해 배재대 평생교육융합학부 24학번으로 입학했다. 인싸인 그는 공부도 잘한다. 수업시간 맨 앞줄에 앉아서 교수의 말을 한 글자도 흘리지 않고 책과 노트에 빼곡히 옮기는 게 공부법이라 했다.
자연스레 그의 가방 안이 궁금했다. 손자가 쓰던 오래된 철필통, 그 안에 가지런히 꽂힌 필기구, 구겨진 페이지 하나 없는 전공 서적, 판서와 자신의 생각을 빽빽하게 옮긴 과목별 노트까지.
그리고 박도규가 수시로 입에 달고 살아서 가방에 꼭 들고 다닌다는 이것까지….
학점 4.3의 비밀은 이렇게 반듯한 도구들과 그걸 꾸준히 들고 다니는 성실함의 무게였다.
에필로그: 91세 ‘초동안’ 대학생
이제껏 취재진이 인터뷰 도중 주민등록증까지 꺼내어 나이를 확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박도규 할아버지는 91세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우렁찬 목소리부터 성큼성큼 걸음걸이까지 모든 게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서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역대급 동안 피부 비법이 가장 놀라웠는데요. 당장 3000원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종일 그를 따라다니다 보니 그는 마인드도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요. 그가 남긴 명언이 있습니다.
“용돈만 줘서는 자식 손주들이 ‘고마워’만 하지, ‘대단하다’는 말을 안 한다. 학교 성적표를 뽑아줘야 비로소 대화 상대로 인정해준다.”
젊게 살려면 젊은이들과 어울리라는 거죠.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막내딸뻘 동기들에게 ‘오라버니’라 불리는 인기만점 박도규에게 그 비법도 함께 들었습니다. 젊은이들 틈에서 더 빛이 나는 박도규의 유쾌한 일상 속으로 같이 들어가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