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가 대법원 최종 판단이 예정돼 있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다시 통과시키면서 학생들과 인권 단체 등이 반발하고 있다. 반면 일부 교사 단체 등은 찬성 입장을 밝히는 등 교권과 학생인권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16일 본회의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가결했다. 재석 의원 86명 중 찬성이 65명, 반대는 21명이었다. 지난해 4월에도 한 차례 의원 발의안 형태로 올라온 폐지안이 시의회에서 가결됐지만, 서울시교육청이 무효확인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내며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릴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 주민이 청구한 조례안 폐지안이 1년 8개월만에 또 한번 시의회를 통과하며 관련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2012년 제정된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성별·종교·나이·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23년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가 사망한 사건 등을 계기로 일각에서 ‘학생 인권만 강조하다 교권이 추락했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조례 폐지론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인권 단체는 서울시의회의 조례안 재가결에 즉각 반발했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이소정(16)양은 “학생인권조례가 사라진다면 함부로 대하는 어른들로부터 지켜줄 울타리가 없다”고 우려했다. 이양은 “2년 전 한 선생님으로부터 ‘공부 못하면 X신같이 사는 거다’란 폭언을 들었지만 선도부에 갈까 봐 이의 제기를 못 했다”며 “학생을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은 여전히 있다. 교권 추락과 학생 인권 보장은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A(16)양은 “중학생 때 선생님에게 부당한 말을 들었던 걸 카톡으로 공유했다가 벌점을 받은 친구들도 있었다”며 “인권조례 폐지 보단 교권과 학생 인권에 대한 교육을 더 강화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14개 단체는 폐지 조례안이 통과되자 입장문을 내고 “학생인권의 후퇴”라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권을 학교에서부터 지켜나가기 위해 제정한 조례인데, 이를 폐지하면 학교는 경쟁과 반목을 부추기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유엔인권기구에서도 2023년 1월 “학생 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은 국제 인권 기준과 차별 금지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조례안 통과 직후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절차를 거쳐 재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교사 단체는 둘로 나뉘었다. 우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 판결에 학생인권조례의 존폐가 달린 상황인데 실효성 없는 폐지를 밀어붙인 것이 정치적 쇼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생 인권과 함께 교사의 인권 모두 존중돼야 하는 건 맞지만, 교권 추락에 대한 원망이 학생인권조례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다 생각한다”며 “서울시의회의 이번 조치가 오히려 교사와 학생의 대립을 부추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에선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장승혁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리하게 재의결 과정을 거친 건 과한 것 같지만, 조례 폐지 자체에는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대변인은 “기존 학생인권조례가 의무와 책임은 소홀히 하고 권리만 과도하게 강조한 형태”라며 “인권을 조례로 규정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3년 교원 3만2951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항목에 84%가 동의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