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남종석씨는 부산의 한 원룸에서 혼자 생활한다. 아내와 사별하고 20년째 이렇게 산다. 가족은 서울에 있는 동생 한명뿐. 다리 수술 이후 건강이 삐걱거리지만, 누군가에게 선뜻 도움을 청하긴 어렵다. 이웃도 얼굴만 알지 손을 내밀긴 언감생심이다.
친한 친구 두 명이 있어도, 고독감은 수시로 그를 찾아온다. 남씨는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외로워서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앞으로 외로움은 더 심해질 거 같다"고 말했다.
남씨 같은 고령 1인 가구 10명 중 4명은 평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독거노인은 관계빈곤에 따른 어려움을 크게 겪는 걸 보여준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한 케어 모니터링 서비스(케어벨)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제로웹'이 중앙일보 요청을 받아 부산의 1인 가구 50명을 설문 조사했다. 응답자 40%는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가족·지인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였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선 몸이 아프거나 우울하고, 갑자기 큰돈이 필요해지는 상황 등에서 도움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밝힌 노인이 6.6%였다. 독거노인의 관계 단절 문제가 훨씬 두드러지는 셈이다.
고립감을 풀어줄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제로웹 조사에서 18%는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이 아예 없다고 답했다. 기분이 울적할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비율은 40%였다.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나머지 응답자의 상대방 수도 '3명 이하'가 56.7%였다.
이웃을 비롯한 지역사회와의 교류도 활발하지 않다. 설문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종교 활동이나 지역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나마 참여하는 이들의 69%는 종교 활동에 집중했다. 취미 모임 같은 다양한 활동 참여는 적었다.
독거노인 문제는 갈수록 커진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이 혼자 사는 가구는 228만8807가구에 달했다. 노인 1인 가구는 2019년(153만2847가구)과 비교하면 5년 새 49.3% 급증했다. 고령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데다 기대수명도 늘어나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그렇다 보니 관계빈곤을 겪는 이도 함께 증가한다. 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1인 가구의 16.1%는 우울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노인 부부 가구(7.8%)의 두 배가 넘는다. 소통할 이가 적은 현실이 정신적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홀로서기 5년 차인 신모(66)씨는 우울증 치료로 증세가 많이 나아졌다지만, 혼자 있으면 문득문득 우울감이 떠오르곤 한다. 가끔 사회복지관에서 비슷한 처지의 독거노인을 만나면 "대개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의 경제적 빈곤 이슈만큼 노인 독거 가구의 관계빈곤도 중요한 문제"라면서 "노인이 사회적 관계를 상실하면 인지능력 악화 등으로 이어진다. 문화센터 이용 바우처나 대학생과의 만남 등 관계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