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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노인 고독사 막았다…요구르트 한병이 보낸 '생존 신호' [관계빈곤의 시대]

중앙일보

2025.12.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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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주 hy 프레시 매니저가 지난 18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인근 주택가에서 독거노인 김옥순씨에게 야구르트를 배달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챙겨주니 정말 좋죠. (나라에서) 절대 끊으면 안 돼요."

지난 18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한 다세대주택. hy 프레시 매니저(방문판매원) 손금주씨가 건넨 건강 음료를 받아든 김옥순(90)씨는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는 남편과 자녀·형제자매 없이 홀로 생활하는 독거노인이다. 김씨의 안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이는 사실상 손씨가 유일하다.

동대문구청은 hy 강북지점과 업무협약을 맺고 김씨와 같은 독거노인에게 주 2회 건강 음료를 배달하며 안부를 살핀다. 배달한 음료가 다음 방문 때까지 그대로 있으면 hy 매니저가 구청에 연락해 이상 여부를 알린다. 손씨는 "꼬박꼬박 얼굴을 보다보니 집 사정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라며 "올해 초에는 집에서 쓰러진 어르신을 발견해 신고했다. 음료 한 병이 생존 신호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날 손씨가 찾은 80대 안길정씨는 "이렇게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편의점에 가상 회사 열고…고독사 전쟁 나선 지자체

지난 18일 서울마음편의점 동대문점에서 한 주민이 안마의자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 주민 2명은 자가진단 테스트나 치매 예방 게임 등이 가능한 '해피 테이블'에서 게임 중이다. 김종호 기자
고독사, 고립·은둔 문제가 떠오르면서 지자체들도 '외로움과의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고독사로 사망한 사람은 3924명으로, 보건복지부가 실태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다.

1인 가구 비중이 전체의 40%에 달하는 서울시는 '외로움 없는 서울(외·없·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외로움을 느낄 때 365일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콜센터 '외로움안녕120'과 외로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인 '서울마음편의점'이 대표적이다. 서울마음편의점 동대문점을 관리하는 이보선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편의점처럼 누구나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환영받는 공간이 목표"라고 밝혔다.

전국 최초 고립·은둔청년 전담기관인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김주희 센터장은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 지 몰랐던 고립·은둔 청년들이 서울에 센터가 생기면서 폭발적으로 신청하고 있다. 올해만 신청이 4600여명을 넘긴 상태"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인천시는 외로움 문제에 대응하는 전담 조직 '외로움돌봄국'을 내년 1월 신설한다. 국 단위 조직을 신설한 건 전국 지자체 중 처음이다. 아울러 내년부터 외로움 지원 플랫폼인 '아이링크 컴퍼니'를 운영할 계획이다. 종합사회복지관 등에 가상의 회사를 만들어 고립·은둔 상태에 놓인 이들이 출퇴근하듯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주어진 임무를 완료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해 음식점 등 실생활에서 쓸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수원시와 부산시는 각각 '쏘옥', '모여봐요 부산 1인 가구'와 같은 1인 가구 전용 포털을 운영하며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손금주 hy 프레시 매니저가 18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인근 주택가에서 독거노인들에게 야구르트 배달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외로움 정책은 당사자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손길 닿기 어렵다. 때문에 집에만 머무는 이들을 어떻게 끌어낼지가 중요하다. 수원시는 '외출 유도 카드'를 통해 외출 때 사용할 수 있는 지역 화폐 50만원을 지급하고 사용 내역을 확인한다. 경남 양산시는 은둔 외톨이 중장년에게 1인당 최대 300만원 한도의 치과 치료비를 지원한다. 양산시 관계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중장년들은 스스로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내놓은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중앙 정부도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발표한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에는 지자체별로 자살예방관을 지정해 지역 자살 예방 업무를 총괄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보건복지부 제1차관을 사회적 고립(외로움) 전담 차관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영국·일본 등 해외 사례를 참조해 우리나라에 가장 맞는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립·은둔 문제가 복합적인 사회 문제이란 점에서 한층 체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로움을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인식하고, 겸직 대신 전담 차관을 두고 보다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선 인공지능(AI) 활용, 민관 협력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스마트한 복지 시스템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채혜선.신성식.이에스더.정종훈.남수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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