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메이저리그는 일본을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관계자가 털어놓은 얘기가 충격적이다.
일본 매체 ‘넘버’는 최근 고타라는 인물의 인터뷰를 3회에 걸쳐 게재했다. 본명은 이시지마 고타다. 올해 63세의 여성이다. 일본 야구계의 대표적인 국제통이다.
그가 지적한 것은 WBC 중계권 문제다. 대회를 주관하는 WBCI는 지난 8월에 전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예선과 본선 47경기의 일본 내 중계권을 넷플릭스가 독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그동안 공짜(공중파 TV)로 보던 것을, 이제는 돈을 내고 봐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본래 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곳이다. 최근에는 오타니 쇼헤이 덕에 훨씬 더 뜨겁다. 그런데 그게 유료화되다니. 엄청난 반감이 들끓었다.
하지만 고타 씨는 이런 일을 예감하고 있었다고 밝힌다.
“올해 3월 열린 도쿄 개막전 때였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현장의 열기를 실감하면서 깜짝 놀랐다. 일본에서의 ‘오타니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ESPN 중계팀의 일원으로 취재에도 참여했다.
“도쿄돔에 인접한 곳에 커다란 굿즈 매장이 오픈했다. 그곳에 기념품을 사려는 행렬이 끝없이 늘어섰다. 이 광경을 보고 ‘MLB는 이제 일본을 ATM이라고 생각하겠구나’라는 느낌을 (미국 측 관계자들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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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오타니를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고타 씨의 주장이다.
“WBC 측은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선수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아마도 제2의 야마모토, 제2의 사사키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타니 같은 인물은 또 없을 것이다. 게다가 31살로 전성기다. 그런 점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WBC가 처음부터 흥행을 위해 탄생한 대회는 아니었다. 야구의 세계화라는 시장 확대가 취지였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지난 대회(2023년)가 예상외의 큰 성공을 거뒀다. 미국과 일본의 결승전, 거기서 마지막에 오타니가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장면은 최고의 순간이 됐다.
MLB의 발표에 따르면 대회 수익이 9000만~1억 달러에 달했다. 환산하면 1332억~1480억 원이다. 역대 최고액을 찍었다. 관중수도 130만 명을 넘겼다. 가장 많았던 2017년 대회의 120% 수준이다. 스폰서 계약, 상품 판매 역시 마찬가지다. 상상을 뛰어넘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일본 방송사가 지불한 중계권료는 30억 엔 정도였다. 280억 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뛰어들면서 얘기가 달라진다. 알려진 바로는 이번에 타결된 액수는 150억 엔(약 1416억 원)이다. 5배나 폭등한 셈이다.
이 정도면 경쟁조차 되지 않는다. 사실 30억 엔은 방송사 쪽의 한계였다. 광고 단가와 편성할 수 있는 시간을 종합해서 최대치라는 의미다.
반면 넷플릭스는 다르다. 광고 숫자나 시간의 제약 따위는 없다. 유입되는 시청자의 숫자가 수익이다. 즉, 무한한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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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중계권 결정 과정도 충격적이다. 일본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중요한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사전 협의나 의견 교환이 당연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NPB(일본 프로야구)는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넷플릭스의 독점 중계권은 주최자 WBCI의 독자적인 결정이다. 우리는 사후 통보를 받았을 뿐이다.”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다. “NPB 탓하지 마라”는 일종의 방어막이다.
요미우리 신문사 역시 비슷하다. 이들은 일본에서 열리는 1차 라운드 10게임의 주최자 자격이다. 예전이라면 일본 내 중계권 배분도 자신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필요 없는 일이 됐다. 역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이 문제를 다루는 일본 매체들이 쓰는 단어가 있다. ‘검은 배’라는 뜻의 흑선(黑船ㆍ구로후네)이다.
이는 1850년대 미국 페리 제독의 함대를 부르던 말이다. 거대한 군함 4척이 요코하마 근처로 와서 강제로 항구를 열게 만들고 정박했다. 일본의 쇄국정책이 종말을 맞고,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진 사건이다.
고타 씨의 우려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3월 도쿄 시리즈 때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의 멘트 하나가 보도된 적이 있다. 이런 내용이다.
“다저스가 몇몇 일본 선수에게 과도한 투자를 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분명한 것은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 중에 가장 핵심은 일본이라는 점이다. 잠재적으로 10억 달러(약 1조 3900억 원)의 가치도 충분하다는 보고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