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당국이 학교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인공지능(AI) 사용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대신 교육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생성형 AI 활용 부정행위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전면 금지’ 대신 ‘관리와 지도’로 방향을 전환했다. 다만 실효성과 학습 효과, AI 활용의 신뢰도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교육부는 학교 수행평가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내년 2월 중 학교 현장에 배포할 계획이다. 수행평가에서 AI 활용을 전면 금지하기보다 허용 범위, 금지 행위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자료 수집이나 아이디어 정리 등에서는 AI 활용을 허용하되, 요약·최종 글쓰기·답안 작성 등 결과물 자체는 학생이 직접 수행하도록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AI를 활용한 경우에는 사용 도구와 범위, 입력한 질문 등을 결과물에 명시하도록 하고, AI가 생성한 글이나 답안을 그대로 제출할 경우 부정행위로 규정하기로 했다.
이날 서울시교육청도 유사한 흐름 속에서 AI 윤리 교육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고, 이를 점검하기 위한 AI 기초소양 진단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진단평가는 희망 학교를 대상으로 우선 내년부터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뒤, 2027년에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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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소양 진단평가, 서·논술 평가 AI 채점도
이 같은 정책 변화는 학교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국어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책 줄거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AI로부터 받은 답변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미리 작성해 둔 내용을 붙여 넣은 사실이 확인돼 해당 수행평가를 전원 무효 처리하고 종이 기반 재평가를 실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AI 사용을 전면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 아래 허용 범위와 금지 기준을 명확히 하려는 것”이라며 “교사가 사전에 AI 활용 가능 범위를 설정하고,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 중에만 이뤄지도록 해 교사가 학생의 수행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실시간 활동 중심 평가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AI 채점을 통해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보완·강화할 수 있다는 구상도 제시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은 AI가 서·논술형 답안을 채점하는 보조 도구로 활용될 경우 교사의 채점 부담을 줄이고 평가의 일관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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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허용, 일부 금지는 AI 교육 현실과 동떨어져”
다만 현장에서는 AI 가이드라인의 실효성과 교육 효과를 둘러싼 의문도 제기된다. ‘일부 단계는 허용하되 최종 결과물은 금지한다’는 식의 기준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지 회의적인 의견을 보이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대다수 대학의 AI 가이드라인는 결과물에까지 AI 활용을 허용하되, 주석처럼 활용 사실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마련돼 있다.
이찬규 중앙대 인공지능인문학연구소장은 “이미 자료 검색이나 아이디어 수집 등 이른바 중간 단계에서 AI의 역할이 최종 결과물에 준하는 수준으로 커진 상황에서, 어디까지는 허용하고 어디부터는 금지하는 식의 관리 방식은 현실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칙은 현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의 한계도 부담을 키운다. 현재 AI 표절·부정행위 탐지 도구가 AI 생성물 및 활용 여부를 안정적으로 가려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I 채점 기술 역시 아직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채점 시기, 기준 설정에 따라 점수가 들쑥날쑥해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가이드라인이 촘촘해질수록 허용과 비허용을 나눠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날 것 같다”며 “한편으로는 ‘AI에 돌려보니 이 점수가 나왔다’며 점수에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이 더 많아질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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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사용 과정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 쌓도록 해야”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이 당장의 혼란을 관리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AI 시대의 교육과 평가 체계 전반에 대한 재설계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가의 AI 가이드라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이태동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글의 구조 설계나 글쓰기를 AI에 맡기는 상황에 대한 우려는 교육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지만, AI 활용을 실효적으로 금지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며 “교육자와 학생 모두 AI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이해한 상태에서 투명한 사용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 스스로 지켜나가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찬규 소장은 “공교육에서는 무언가를 시키기 위해 평가와 시험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지만, AI 활용은 진단평가 또는 규칙으로 길러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면서도 그 과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정밀한 교육 설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