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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손잡고 中 견제… 트럼프, 李 방중 직전 '황금 함대' 발표

중앙일보

2025.12.22 23:16 2025.12.2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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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이른바 ‘골든 플릿(Golden Fleet·황금 함대)’ 구상을 공식화하면서 한·미 조선협력(MASGA)이 군사와 산업 양 측면에서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한화오션을 미 해군 재건의 핵심축으로 지목하면서 한국은 새로운 미 해군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는데, 이는 그만큼 대중 외교에서 부담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마러라고 별장에서 골든 플릿 구상을 발표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에 있는 마러라고 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 해군력 증강을 위한 골든 플릿 구상을 공개했다. 이 구상은 인도·태평양에서 급속히 팽창하는 중국 해군력을 견제하고 반접근·지역거부(A2/AD) 능력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강력한 장거리 미사일을 탑재한 대형 군함과 이를 뒷받침할 다수의 무인 혹은 소형 호위함을 결합하는 '바벨형 선단'의 형태로 운용하는 게 핵심이다.

이번 구상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한국의 역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해군이 도입할 신형 프리깃(호위함) 건조와 관련해 한화를 직접 거론했으며, 건조 장소로는 한화가 인수한 미국 필리 조선소를 지목했다. 이는 한·미 조선 협력이 기존의 유지·보수·정비(MRO) 분야 협력을 넘어 미국 현지에서의 군함 건조 단계로 확대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지난달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통해 합의한 "한국 내에서의 잠재적 미국 군함 건조"로 나아가기 위한 수순으로 볼 여지도 있다. 미국 현지 건조를 시작으로 향후 한국의 역할이 단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황금 함대와 같은 분산형 함대 구상은 동맹국이 정비·보수, 기지 제공 등을 통해 미국 해군 전략에 더 깊이 참여하도록 만들 것”이라며 “이는 새로운 산업·전략적 기회인 동시에 상호운용성과 부담 분담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 방어 중심을 넘어 미 해군의 전구 단위 작전에 맞춰 해군 전력 구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황금 함대 구상은 최근 중단된 미국의 콘스텔레이션급 호위함 사업을 대체하는 성격도 띤다는 분석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 해군은 연안전투함(LCS) 실패 이후 콘스텔레이션급 프리깃함을 추진했지만 속도와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드러났다”며 “황금 함대를 구성할 차세대 프리깃함 사업이 중국 견제라는 목적을 달성할 만큼 성공적일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골든 플릿 발표 기자회견에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존 펠란 해군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소속 안보 핵심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트럼프의 옆은 존 펠란 해군 장관. AFP=연합뉴스

다만 미국이 황금 함대 구상을 내놓으면서 한국을 핵심 파트너로 언급한 시점이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직전이란 점이 공교롭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내년 초 취임 이후 처음 중국을 국빈방문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할 예정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시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한화오션을 제재했다가 한·중 정상회담 이후 제재를 1년 유예하기로 하는 등 MASGA에 노골적인 견제구를 던졌다. 한·미가 정상급에서 합의한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서도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2일 군사전문가 쑹중핑(宋忠平)을 인용해 “한국과 미국의 핵 추진 잠수함 계획은 핵 비확산에 심각한 위협이며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평화와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해군 재건과 제조업 부흥 흐름 속에서 한국 조선업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기회이지만, 동시에 미·중 전략 경쟁에 휘말릴 위험이 커지는 부담도 적지 않다. 중국을 향해 MASGA가 특정 국가를 겨냥한 조치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다 정교하게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군사 협력의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협력이라는 성격도 함께 있다는 점을 중국에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한·미 관계의 특수성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에 대한 기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번 황금 함대 구상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지도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4월 방중을 앞두고 중국과 정면 대립을 피하고 있는 건 한국에도 외교적 공간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타협 성향이 강한 만큼 이번 구상 역시 조선업 재건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크다”며 “미·중 관계나 한·중 관계의 돌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해군 로스엔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 '그린빌함'(SSN-772·6900톤급)이 23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뉴스1.
◇美 핵잠, 10개월만 국내 입항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LA급) 핵추진잠수함인 그린빌(SSN-772·6900t급)이 23일 오전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미 핵잠이 국내에 입항한 건 지난 2월 알렉산드리아함(SSN 757·6900t급) 이후 10개월 만이다.

1996년 2월 취역한 그린빌함은 길이 110m, 폭 10m로 승조원 110여 명이 탑승할 수 있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12개의 수직발사시스템(VLS), 어뢰 및 4개의 발사관 등을 갖췄다.

해군은 군수적재 및 승조원 휴식을 위한 입항이라고 밝혔지만, 중·일 갈등이 한 달째 이어지는 등 역내 긴장 상황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해군 관계자는 “그린빌함 입항을 계기로 한·미 해군 간 교류 협력을 증진하고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공고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현주.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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