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가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에서 받은 대출을 중심으로 연체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내수 부진과 고령층 증가로 1000조원을 넘긴 자영업자 대출의 ‘질’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72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7% 늘었다. 연체율도 높았다.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은 1.76%로, 장기 평균(2012년 이후 1.41%)을 웃돌았다. 특히 상호금융ㆍ저축은행 등 상대적으로 대출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연체율이 3.61%로, 은행대출 연체율(0.53%)의 6.8배에 달했다.
장정수 한은 부총재보는 “금리를 낮추는 완화적 국면에도 연체율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은, 경기 부진과 함께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다중채무ㆍ저소득 등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이 11.09%에 달한다는 점이다.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 자영업자(0.5%)의 22배가 넘는다. 취약 자영업자 수는 41만8000명으로, 전체 자영업자의 14%에 해당한다. 임광규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추가경정예산, 새출발기금, 기준금리 인하 효과 등이 반영되며 빚을 갚기 어려운 취약계층 연체율이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상당히 높은 수준(11.09%)”이라고 진단했다.
연령별로 보면 은퇴 전후의 고연령층을 중심으로 대출이 빠르게 늘었다. 60대 이상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3분기 기준 389조6000억원으로, 2021년 말(124조3000억원) 대비 3배 이상 불어났다. 연체율은 경제활동이 활발한 40대가 2.02%로 가장 높았고, 60대 이상도 1.63%로 평균(1.76%)을 상회했다. 임 국장은 “빚을 갚기 힘든 취약 자영업자 대출 가운데 60대 이상의 비중이 15.2%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며 “고연령 자영업자는 은퇴 후 소득이 줄어 취약 자영업 차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업종별로 보면 고연령 자영업자는 임대업과 같은 부동산업 대출 비중이 38.1%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모아놓은 자산을 바탕으로 대출만 끌어오면 할 수 있는 부동산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문용필 한은 안정분석팀장은 “상가 등 임대업의 경우 부동산 시장 구조 변화와 경기 변화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
월세 비중 60%...“가계부채 줄지만, 소비 여력도 줄어”
이날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안정보고서를 의결했다. 단기 금융안정 상황을 보여주는 금융불안지수(FSI)는 지난달 기준 15.0으로(주의 단계), 지난 6월(18.6) 대비 하락했다.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취약성을 평가하는 금융취약성지수(FVI)는 3분기 45.4로, 지난 1분기(43.9) 대비 상승했고, 장기 평균(45.7)에 근접했다. 두 지수 모두 수치가 높을수록 상황이 나쁘다는 건데, 단기적 위험이 줄어든 대신 중장기적 취약성은 커졌다는 의미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협하는 ‘약한 고리’로는 서울 집값 상승세가 꼽힌다. 전국 아파트의 시가총액 가운데 서울 아파트 비중은 지난달 말 기준 43.3%로, 지난 2020년 8월 기록한 전고점(43.2%)을 웃돌았다. 가계신용(빚)은 3분기 기준 1968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 늘었다. 6·27대책 등의 영향으로 증가세가 둔화했지만, 지난 10월 이후 국내외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가 늘면서 증가 폭이 다시 확대됐다. 한은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주택가격 상승세 지속은 금융 불균형 누증 확대 등의 잠재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는 임대차 시장에도 변화도 가져왔다. 지난 10월 월세 거래(계약 기준) 비중은 60.2%로, 장기 평균(44.9%)을 크게 넘어섰다. 한은은 “월세 비중 확대는 가계부채 축소와 함께 주택시장의 변동성을 낮춰 금융안정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월세 지출에 따라 주거비 부담이 늘면서 취약계층의 소비 여력을 줄이거나 채무 상환 부담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