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글로벌 협력과 투자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로 사법리스크를 벗은 뒤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영 전략도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삼성SDS는 23일 오픈AI(Open AI)와 리셀러 파트너 계약을 체결하고, 기업용 생성AI 서비스인 ‘Chat GPT 엔터프라이즈’를 국내 기업 고객에게 공급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이재용 회장과 샘 올트먼 OpenAI 최고경영자(CEO)이 만난 뒤 두 달 만에 구체적 사업 성과가 나온 것이다.
ChatGPT 엔터프라이즈는 기업에서 요구되는 보안 수준과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일반 서비스보다 빠른 처리 속도와 함께 고급 데이터 분석 기능, 다양한 맞춤형 설정 등 기업 활용에 특화한 기능을 제공한다. 기업 내부 데이터가 외부 학습에 활용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어, 보안과 규제가 중요한 기업 환경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삼성SDS는 도입 단계부터 구축과 운영까지 전 과정을 맡아 기업 내부 데이터와 업무 시스템에 맞춘 생성AI 활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호준 삼성SDS 클라우드서비스사업부장(부사장)은 “제조·금융·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기업 AI 전환’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삼성은 전장 사업에서도 대형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삼성전자는 자회사 하만이 독일 ZF프리드리히스하펜의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사업을 15억 유로(약 2조6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독일 플랙트그룹(공조·15억유로) ▶독일 ZF ADAS 사업(전장·15억유로) ▶미국 마시모 오디오 사업부(오디오·3억5000만달러) ▶미국 젤스(헬스케어·수천억원대 추정) 등 올해에만 4번째 대규모 빅딜을 진행했다.
ZF는 1915년 설립된 독일의 글로벌 전장 업체로, 하만이 인수하는 ADAS 사업은 25년 이상의 업력을 지닌다. 글로벌 ADAS 스마트 카메라 시장 점유율 1위로, BMW와 폭스바겐 등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제품을 공급해왔다.
이번 인수로 하만은 차량 전방 카메라와 ADAS 컨트롤러 등 주행보조 핵심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기존 하만의 강점인 디지털 콕핏과 결합해 중앙집중형 컨트롤러 시장 역량을 강화하고,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전환 흐름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사업 인수 절차는 2026년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하만은 2017년 이재용 회장이 전장 사업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며 인수한 기업이다. 당시 9조6000억원(80억 달러)이 투입됐는데, 삼성그룹 역대 최대 규모 M&A이자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한 사례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오랜 기간 공들인 결과 전장 부문 성과도 가시화하고 있다. 하만 매출은 2017년 7조1000억원에서 2024년 14조3000억원으로 2배로 늘었고, 영업이익도 1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삼성은 AI와 전장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글로벌 협력과 투자를 이어가며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진다는 방침이다.
삼성은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 인공지능(AI)과 전장, 헬스케어, 로봇 등 미래 사업을 중심으로 M&A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기술 경쟁력을 갖춘 소규모 기업들을 인수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졌고, 올해 들어서는 전장과 공조, 디지털 헬스 분야로 M&A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기술 축적과 생태계 확장을 동시에 노린 전략적 행보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