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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새 10% 급락, 아시아 최약체 된 원화…"1500원 진입도 가능"

중앙일보

2025.12.23 02:01 2025.12.23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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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달러·원 환율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 종가와 비교해 11.39포인트(p)(0.28%) 상승한 4117.32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은 전일 대비 9.58포인트(p)(1.03%) 하락한 919.56로 마감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일 오후 3시 30분 주간종가 대비 3.50원 오른 1483.60원을 기록했다. 2025.12.23/뉴스1

1달러=1483.6원. 외환 당국이 각종 대책을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지만 23일 원화값은 연중 최저치에 바짝 다가섰다. 1차 저항선인 1480원 선을 이틀 연속 뚫리자 1달러당 ‘1500원 시대’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날 미국 달러당 원화값은 주간 거래에서 전날 종가(1480.1원)보다 3.5원 내린(환율 상승) 1483.6원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관세전쟁이 본격화됐던 지난 4월 9일(1484.1원) 이후 가장 낮은 원화값이다. 그 결과 올해 연평균 달러당 원화값은 23일 기준 1421.67원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가장 낮다.

김경진 기자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반년 새 한국 원화는 달러 대비 10% 가까이 급락하며, 주요 선진국과 아시아 통화 가운데 최약체로 밀려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대비 지난 22일까지 한국 원화는 달러 대비 9.6% 하락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당선 이후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추진된 일본의 엔화(-9%)보다 하락 폭이 더 컸다. 같은 기간 영국 파운드(2.5%)와 스웨덴 크로나(2.1%), 중국 역외 위안화(1.7%)는 물론 말레이시아 링깃(3.5%)과 태국 바트(3.7%) 등 신흥국 통화까지 날아오른 것과 비교하면 원화 약세는 두드러진다.

‘원화의 구매력’을 해외 통화와 비교해볼 수 있는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10월 말 기준 89.09로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9년 8월 말(88.88)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국제결제은행(BIS)이 해당 통계를 발표하는 64개국 중 일본(70.41), 중국(87.94)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치다.

기존의 ‘환율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경상수지 흑자’는 올해 들어 10월까지 895억8000만 달러(약 133조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코스피는 처음으로 4000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미국 달러는 기준금리 3연속 인하로 약세를 띠면서 전통적인 원화 강세 조건이 동시에 갖춰졌지만, 원화가치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신재민 기자
가장 큰 이유는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보다 개인과 기관, 기업의 해외 투자로 빠져나가는 달러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 10월까지 해외주식과 채권 등 증권투자 (724억7000만 달러)와 해외 직접투자(223억2000만 달러)를 합한 규모는 누적 경상수지를 62억1000만 달러 웃돌았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7월부터 10월까지 넉 달간 개인투자자는 국내 주식을 23조원어치 팔아치우고(순매도), 해외주식은 103억 달러(약 15조2500억원)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한국과 미국 증시가 모두 올랐지만, 서학개미는 국내 증시서 차익을 실현한 뒤 미국 등 해외주식으로 자금을 옮긴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 역시 같은 기간 코스피 시장에서 2조616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거품론이 불거졌던 지난달에는 코스피에서 14조17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역대 최대 순매도였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도 원화 가치 하락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미국과의 관세 협상 불확실성, 내수 부진, 원화 약세가 장기화하면서 성장률은 연 1% 안팎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초 기대치(2%)의 절반 수준인 0.9~1%로 제시하고 있다.
차준홍 기자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닮아간다”며 “국내 투자가 줄면서 산업 공동화에 따른 성장 잠재력 저하는 원화값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또 미국과의 관세 협상으로 연간 200억 달러(약 29조원)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 투자된다는 점도 원화값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단기적인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로는 구조적인 달러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내년 1분기까지는 원화값 달러당 1500원을 수시로 넘나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꼽는 1500원 선이 깨지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 정부의 시장 안정화 조치와 연말 기업들의 달러 매도 가능성을 고려하면 1500원 돌파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염지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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