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 해군이 사상 최대 규모의 전함 두 척을 새로 건조하는 계획을 승인했다”며 “미 해군을 위해 구축 중인 이 함대를 우리는 ‘황금 함대(Golden Fleet)’라고 부른다”고 발표했다. 현재 주력인 9500t급 ‘알레이버크급’을 대신할 3만~4만t 초대형 전함을 건조해 최첨단 무기는 물론 핵무기까지 탑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초대형 전함의 레벨은 ‘트럼프급(Trump Class)’으로 명명했다.
첫 트럼프급 전함의 이름은 ‘USS 디파이언트(Defiant)’다. 디파이언트는 지난해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 가족기업이 출시하려던 암호화폐 플랫폼 ‘더 디파이언트 원스(The DeFiant Ones)’와 이름이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미 아이오와·미주리·위스콘신·앨라배마급 등 수많은 전함을 만들었고 거대한 전함을 보유했지만 (새로 건조하는 전함은) 이들보다 100배의 힘과 위력을 지닐 것”이라면서 두 척을 시작으로 “매우 신속하게 8척을 추가로 더 건조할 계획이며, 총 20~25척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형 전함은 함포는 물론이고 전자기 레일건, 극초음속 미사일, 고출력 레이저 등 다양한 미래형 무장을 갖추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를 탑재하고, 인공지능(AI)도 큰 요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급 전함과 함께 대형 항공모함 3척, 잠수함 12~15척 등을 추가로 건조한다.
트럼프의 ‘황금 함대’ 구상은 중국에 대한 미 해군의 경쟁력을 대폭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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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름 집착’
…전함 레벨은 ‘트럼프급’, 이름은 ‘가족 코인’과 동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매일 군함 4척씩을 건조할 정도로 압도적 조선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선업 쇠락과 함께 군함 건조 능력이 떨어졌고, 세계 최대 조선 생산 능력을 확보한 중국에 해군력을 따라잡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미국은 수년간 많은 신형 군함을 건조해 왔지만 이들은 점점 더 작아졌고, 이는 우리의 ‘힘을 통한 평화’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육중한 전함은 항공모함 함재기와 대함 미사일에 밀려나면서 1994년 이후 생산되지 않고 있다. 미 해군의 마지막 전함인 4만5000t급 미주리함(BB-63)은 92년 3월 1일 퇴역했다. 미 해군의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급이 4만5000t급이다. 전투기와 헬기를 탑재한 아메리카급은 경항모로도 분류된다. 미 해군의 줌왈트급 구축함은 1만6000t급, 중국의 055형 구축함은 1만3000t급이다.
한편 이번 프로젝트로 한국의 대미 조선업 투자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가 탄력을 받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황금 함대’ 사업의 파트너로 한국 기업 한화를 직접 언급했다. “지난주 해군은 새로운 급의 프리깃함(건조 계획)을 발표했다”며 “그들은 한국 회사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회사에 대해선 “한화라는 좋은 회사”라며 “(한화는)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 5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평가는 엇갈린다. 미래형 최첨단 무기를 탑재해 해군력을 강화하려면 거대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레일건이나 레이저는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선체가 커야만 대형 발전기를 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드슨연구소의 브라이언 클라크 연구원은 군사 전문 매체인 브레이킹디펜스와의 인터뷰에서 “공격·방어를 모두 수행할 수 있으려면 구축함보다 큰, 즉 충분한 미사일 탑재량을 갖추거나 대형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선체를 지닌 함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트럼프급 전함 건조에 2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국 조선업계의 현실을 고려하면 계획대로 가능할지 미지수다. 게다가 레일건, 극초음속 미사일, 레이저 등 신형 전함에 탑재될 주요 무기들은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았거나, 실전 배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미국 미시간대 조선해양공학과의 조너선 페이지 교수는 신형 전함 1척 건조에 드는 비용을 40억~45억 달러(약 5조9000억~6조6000억원)로 추산했다. 마크 몽고메리 전 해군 소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수직발사 시스템이나 이지스 방어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전함은 “전술적 활용도가 전무하다”면서 “‘전함은 멋있어 보이는 배’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주얼 중시 기조에만 초점을 맞춘 계획”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