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외국인 '이불 성지'된 광장시장…"카드NO, 현금!" 낯뜨거운 K탈세

중앙일보

2025.12.23 12:00 2025.12.23 16:2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관광객들이 이불을 구경하고 있다. 곽주영 기자

“똥베이(冬被ㆍ겨울이불), 쏭베이(松被ㆍ솜이불)!”
“메이드 인 코리아!”

2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중앙 지점을 조금 벗어나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기자 상인들의 서툰 외국어가 들려왔다. ‘이불 골목’으로 불리는 이곳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명의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약 50m 길이의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마다 이불이 천장에 닿을 만큼 쌓여 있었고, 통로 양옆에도 이불이 놓여 있어 성인 2명이 나란히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창호(가명)씨는 “장사가 잘되는 시기엔 1개당 5만원씩 하는 이불을 하루 평균 200장 정도 판매하는 날도 있다”며 “특히 관광객 1명이 선물용으로 몇십개를 사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이 골목 침구 가게 중엔 통역을 담당하는 외국인 직원을 배치하거나, 대만 달러화도 받는 가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김밥이나 빈대떡 등 먹거리로 유명한 광장시장이지만, 최근 대만ㆍ싱가포르 등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선 ‘이불 쇼핑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현지에서 퍼졌기 때문”(광장시장 상인총연합회 관계자)이다. 한국으로 여행 중인 대만 국적의 엄이정(31)씨는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값싸고 예쁜 이불을 살 수가 없다”며 “백화점에서만 수십만원을 지불하고 사야하기 때문에 부모님 것까지 다 한국에서 사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 직원이 이불을 진공 압축 포장하고 있다. 곽주영 기자

이날 이불 골목을 찾은 관광객 대부분은 소셜미디어(SNS)를 보면서 가격을 비교하거나, 가족ㆍ지인과 영상 통화를 하며 쇼핑을 했다. 한 이불 가게 사장 A씨는 “SNS 영상을 보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부쩍 많아지는 추세”라며 “주변 가게들이 인스타그램 릴스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비로 월 200만원씩 투자한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의 상인들은 무거운 이불을 진공 압축해 가방처럼 들 수 있게 포장해주거나, 배송비 1~2만원을 추가로 받고 현지로 직접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무자료 거래 통한 탈세 우려도

이불 골목이 이처럼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로 성장하며 시장 전체 활성화에 기여하고 적지 않은 외화를 벌어 들이는 ‘효자 아이템’으로 평가받지만, 일각에선 ‘탈세의 성지’가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세금 계산서나 현금 영수증이 없이 거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중앙일보가 방문 한 침구 가게 10곳 중 5곳은 카드 결제 시 현금 거래가 보다 10% 가량 더 비싸게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일부 상인은 카드만 있는 관광객에게 “정말 현금이 하나도 없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한 가게 주인은 이불을 구매한 대만 관광객이 ‘현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발급이 어렵다”고 답했다. 대만 국적 관광객 페니(30)씨는 “카드로 결제하면 돈을 더 내야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어서 현금을 급히 환전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침구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남성 B씨는 “이불을 가져오는 도매상들부터 소매업 가게들까지 ‘무자료 거래’를 암암리에 하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침구 납품 기업 관계자인 C씨도 “광장시장에선 월 소득 신고액을 10분의 1까지 축소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현금가와 카드가를 달리 받거나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행위는 여신전문금융업법(제19조)에서 금지하는 불법 행위다. 국세청은 이불 가게 등 ‘가정용 직물제품 소매업’을 현금 영수증 의무발행업종으로 지정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통화에서 “현금 결제 유도나 무자료 거래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으며 관할 기관과 함께 조치들을 계속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한 이불가게 상점 앞에 '중국어 가능' '대만·미국 달러 가능'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전문가들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일 수록 더욱 더 투명한 세수 확보를 위한 계도 강화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현금 거래 유도 등에 대해 “거래 증빙을 남기지 않고 부가가치세를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며 “종로구청 등 지자체가 나서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도 “외국인 관광객들이라 크게 문제삼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더라도, 카드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거나 무자료 거래를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며 “세무당국이 계도 조치를 강화하고 세수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주영.오삼권([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