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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천국 된 캄보디아…중국 삼합회·현지 권력 희생양은 한국인 [월간중앙]

중앙일보

2025.12.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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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캄보디아는 어쩌다 범죄 천국이 됐나

범죄자금 수익 연간 125억 달러…캄보디아 GDP 50% 차지
공권력 묵인 아래 한·중 범죄조직 활개, 표적은 오직 한국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웬치(??·범죄단지)로 추정되는 건물 모습. [연합뉴스]
2025년 하반기를 강타한 키워드는 ‘캄보디아’였다. 언론은 물론이고 유튜브에서도 캄보디아는 전 국민의 이목을 흡수했다. 캄보디아의 박람회를 갔다가 중국 범죄조직 삼합회에 납치된 박모(22) 씨가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 사태의 서막을 열었으나, 그 직후 드러난 이 나라의 범죄 실태를 보면 박씨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기 때문이다.

범죄계 동향을 잘 아는 강력팀 형사들이나 조폭의 법률 상담을 전문으로 삼는 ‘옥바라지 변호사’ 등의 얘기를 종합하면 한참 전부터 쌓였던 동남아 범죄 실태가 이제 터졌다는 반응이다.

“우리가 캄보디아로 넘어간 건 3년 전이다. 그 나라에서 문을 열어줬으니까.” 이들의 소개로 만난 수도권의 한 조폭 정모(42) 씨는 이렇게 털어놨다. 6년 전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 개장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살고 나온 인물이다. 소위 전국구로 수도권 조폭 핵심들과 연결된 그는 “이제 우리 돈벌이가 ‘사이버’쪽인데 동남아에 파견 안 나가본 조폭이 있을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국내 조폭들의 캄보디아 진출 배경

그가 말하는 사이버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불법 도박사이트(토토사이트)와 리딩방 투자 사기, 해외 선물 사기 등 금융 범죄를 의미한다. 유례를 따지고 보면 모두 토토사이트에서 진화했다. 2006년 우리나라에 스포츠 도박 ‘프로토’가 도입되면서 범죄계에는 일대 개벽이 일어났다. 조폭들은 당국의 10만원 베팅 상한을 풀어버렸는데 이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다 줬다. “한국인은 도박을 좋아한다. 당시 가장 인기였던 프리미어리그가 열리는 새벽이면 수십 억이 넘는 돈이 움직였다.”

싼 임대료의 오피스텔과 컴퓨터 몇 대, 토토사이트를 제작할 줄 아는 개발자만 구하면 조직 규모와는 상관없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거기다 기존의 경제 수단인 유흥업소 관리나 사채업, 중고차 허위매물, 하우스 도박장 운영보다 편리하고 쉬웠다. 2010년대부터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이른바 ‘MZ 조폭’으로 불리는 신생 범죄 집단이다. 이들은 기존의 조직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본과 인맥도 없다. 고등학교 동창이나 소년원 동기 등 4~5명이 모인 소규모 조직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돈줄을 유지할 수 있는 게 토토사이트였다.

“바로 조폭들의 동남아 러시가 시작됐다. 굳이 경찰 단속을 신경 써가며 한국에서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머리 돌아가는 동생들 관리자로 보내고 국내에는 총판(토토사이트 회원을 유치하는 영업직)이나 대포통장을 공수해오는 하선들만 남기면 됐다.”

국내 조직이 선점한 지역은 베트남과 필리핀이었다. 모두 물가가 싸고 치안 수준은 떨어진다. 공무원의 부정부패와 뒷돈 문화도 범죄계엔 매력적인 요소였다. 같이 죽자고 덤비는 도박쟁이가 재수 없게 고소해서 외사국(국제협력관실 전신)의 내사를 받거나 특경법 사기로 적색수배 대상이 돼도 무마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수배자가 되면 현지 경찰이 찾아와 곧바로 뒷돈을 챙겨갔다. 통상 공무원 월급의 3배였는데, 현지에선 이를 3·3·3이라고 했다. 먼저 담당자와 직속 상사가 3할씩 챙기면 남은 돈을 서장급이 가져가서 그렇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도피생활 중 현지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차렸던 수배자의 회고다.

하지만 이 시절도 2020년 들어선 수명을 다했다. 워낙 많은 조폭이 넘어오는 탓에 국내 경찰도 비록 해외지만 지리감을 익혔고, 현지 경찰들과도 공조 체제를 구축했다. 아울러 교민 사회도 경찰의 제보라인으로 활동하는 까닭에 예전처럼 활동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때 우리는 캄보디아로 시선을 돌렸다. 캄보디아 이민 브로커들이 제시하는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정씨는 말한다.

이민 브로커는 조폭 한 명을 들여보내면 캄보디아 당국으로부터 수수료를 챙긴다. 일종의 중개인이다. ‘나까마’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사업 라이선스와 시민권을 패키지로 묶어 3000만~4000만원 선의 가격에 팔았다. 합법적인 사업을 나라에서 주는 것이니 거기서 무슨 불법을 벌여도 문제 될 일 없다고 했다. 국내 수사기관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생면부지의 땅이란 것도 장점이었다. 이에 범죄조직 상당수가 캄보디아로 대거 이주했다는 설명이다.

취재 과정에서 소통한 브로커는 “피라미 몇 명 넘기는 거로는 돈이 안 된다. 그래서 머릿수를 움직일 수 있는 간부급만 영업한다”고 나름의 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국내 조폭들은 그렇게 캄보디아 전역의 웬치(园区·범죄단지)에 들어갔다. “브로커의 말을 믿었던 확실한 이유도 있다. 캄보디아는 오래전에 이미 중국 조직에 잠식돼서 그들이 없으면 나라가 무너질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니 후발주자로 끼어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실제로 캄보디아는 중국 조직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전역에 난립한 웬치는 삼합회와 푸젠갱이 양분하고 있었다. 이들의 범죄 유형은 마약 밀매, 인신매매, 로맨스 스캠, 보이스피싱이다. 박씨를 납치하고 살해한 조직이 바로 이 삼합회 계열이다. 앞서 국정원은 2023년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발생한 ‘마약 음료 사건’ 배후와도 연결돼 있다고 했는데 당연한 얘기다. 모두 거미줄처럼 연결된 삼합회의 하부 조직이기 때문이다. 자금 흐름은 전형적인 다단계식으로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 돈을 벌어 위로 올린다.



노예 개발자 감금하고 고문

중국 푸젠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푸젠갱은 삼합회와 달리 위계 질서를 갖춘 조직이 아니다. 각각 독립된 소규모 조직들이 지연과 인맥으로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캄보디아에 대규모 웬치를 조성해 급성장한 프린스그룹도푸젠갱으로 분류된다. 이 그룹의 수장 천즈(陳志·38)가 푸젠성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캄보디아의 최대 실권자인 훈 센 전 총리와 그의 아들 훈 마네트 현 총리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웬치를 굴렸다. 캄보디아 사태로 실종되기 전까지 그가 벌어들인 범죄자금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솔직히 말해 캄보디아에선 우리가 소중한 재원(財源)이다. 원화를 벌어다 현지에서 물 쓰듯이 써대니까.”

토토사이트나 코인 투자, 해외선물 사기 등 금융 범죄에 특화된 국내 조직의 피해자는 한국인이다. 이렇게 축적한 원화는 카지노와 유흥업소, 마약 유통, 성매매 등 현지의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간다. 나라의 밑천을 챙겨도 단단히 챙기는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 조직도 납치 대상으로 한국인을 겨냥한다.

“다른 나라 사람을 납치해봐야 몸값은 100만원 정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최소 1000만원에서 스타트한다.”(시아누크빌 교민회장 오창수 선교사)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일대 등 웬치는 50곳을 넘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 거점에 조직이 수십 개씩 자리했다고 가정하면 전체 규모는 수천 개로 불어난다. 실제로 웬치 전역에서 벌어들이는 연 수익은 125억 달러(약 17조원)로 추산되며 이는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50%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다. 재원으로 인정받는다는 정씨의 얘기가 완전히 빈말은 아닌 것이다.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한때 범죄의 천국으로 불린 필리핀을 보라. 카지노가 텅 비었다. 죄다 캄보디아로 몰려가서 돈 쓸 사람이 없다. 그나마 원정 도박단이 돈 좀 쓰고 간다지만 우리 돈으로 호황을 누리던 예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캄보디아 범죄조직에는 일반인 피해자도 있다. 박씨처럼 중국 조직에 납치돼 몸값 흥정에 실패한 조직원에 살해당하거나 최후까지 목숨만 부지해 웬치에 감금된 이들이다.

금융 범죄에 연루된 경우도 많다. 토토사이트나 가짜 코인 투자 사이트를 만드는 개발자들이다. 이들은 구인 사이트를 통해 모집된다. 홍보되는 수당은 월 1000만~2000만원 수준이며 흔히 ‘고수익 알바’로 포장되는 일자리다. 학력과 나이 무관,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한다.

이걸 보고 캄보디아로 넘어간 순간 이들은 노예로 전락한다. 통풍도 안 되고 먹다 남은 음식물 포장지나 빈 캔이 널린 작업방에 갇힌 채 개발 작업만 하게 된다. 작업이 느리면 구타당하는 것은 예사고 물고문도 당한다. 범죄계에 따르면 고통을 호소하는 개발자에겐 필로폰이나 진통제를 투약한다. 어디서든 구하기 쉬우니까. 그런데 이것도 형편 좋은 얘기고 본드를 넣은 비닐봉지를 삼키게 해서 마취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최종적으로는 빈사 상태에 빠진다.

지난 7월 캄보디아 경찰이 프놈펜에서 검거한 범죄단체 조직원들. [EPA=연합뉴스]
거기다 약속한 수당은 먹고 재워주는 비용으로 정산되는데, 몰래 웬치에서 도망쳤다고 해도 조직에 여권과 신분증을 빼앗긴 터라 이들이 공항에 갈 수는 없다. 유일한 선택지는 주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뿐이다. 하지만 수사권도 없는 대사관에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여권을 재발급받는 데도 행정 절차상 2주일이 걸린다. 그까지 알아서 은신해야 하지만 십중팔구는 다시 잡힌다. 범죄조직도 이들이 의지할 데가 대사관밖에 없다는 걸 알고 근방에 이른바 연행조를 포진시켜 둔다. 현지 경찰도 그들과 유착해 있을 공산이 커서 도움이 안 된다. 거기다 캄보디아 경찰 월급은 100만원도 채 안 되는데, 월급보다 더 많은 상납금을 조직으로부터 받아 생활한다. 규모가 큰 웬치는 경찰 수뇌부까지 연결돼 있다.



공권력·대기업·조폭의 ‘삼각 거래’

최근 캄보디아가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는 듯하나 실제로는 시늉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금 웬치가 기승을 부릴 거라는 게 범죄계의 전망이다.

일단 캄보디아는 범죄자 입장에서 여전히 조건이 갖춰진 국가로 평가된다. 각종 범죄를 저질러도 검거 가능성이 작고, 도피와 은신, 자금 세탁이 동시에 가능한 환경이라는 점에서다.

밀입국 도주로도 활짝 열려 있다. 캄보디아 남부 국경도시 바베트에선 베트남 호찌민까지 약 60km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라 태국·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통하는 속칭 개구멍이 여럿 뚫려 있다.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지난 10월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중앙포토]
현재의 국가 간 공조 시스템도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캄보디아는 범죄조직을 통해 얻는 막대한 이익을 이미 경험했다. 심지어 고위공무원들마저 범죄단지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범죄조직, 대기업, 정치권이 맞물린 유착 구조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2년 정도 잠잠해지면, 범죄조직들이 다시 캄보디아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범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외사국 출신 경찰 관계자)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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