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모든 순간 속죄하라" 울먹인 판사…용인 일가족 살해범 무기징역

중앙일보

2025.12.23 23:33 2025.12.23 23:5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부모와 처자식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해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로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이모씨. 연합뉴스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속죄하라”

노부모와 배우자, 딸 2명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한 50대 가장 이모씨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한 말이다.

수원고법 형사2-1부(고법판사 김민기 김종우 박광서)는 24일 존속살해 및 살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항소심에서 “원심에서 압수한 증거물 일부에 법리 오해가 있었고, 피고인의 업무상 배임 혐의(징역 1년 선고)는 원심판결 이후 형이 확정돼 판결에 고려되지 못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했지만 형량은 원심과 동일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 4월 14일 오후 8시에서 15일 0시쯤 경기 용인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80대 부모와 50대 부인, 10~20대 두 명의 딸 등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그는 광주광역시 일대에서 민간임대아파트 신축·분양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다수의 형사고소를 당하고 수십억 원 상당의 채무를 지게 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지난달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기 싫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계획적으로 살해했다. 죄질이 매우 중하고 불량하다”며 1심에 이어 재차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인은 낳아 길러준 부모를 살해해 천륜을 저버렸고 평생을 함께한 반려자를 살해했으며, 말 못하는 짐승도 제 생명을 내주고 새끼를 품어 지키는데 (피고인은) 어엿한 성년이 돼 꿈을 실현하던 두 딸을 살해했다”며 이씨를 질책했다. 이어“딸과 배우자가 저항하는데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며 “피고인의 범행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버겁다”고 덧붙였다. 재판장은 이 과정에서 잠시 울먹이거나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여러 차례 말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채무 등으로 남은 가족들이 힘들게 살 것으로 생각해 살해한 것으로 보이지만 역지사지로 곱씹어봐도 범행을 납득할 수 없다. 피고인이 무슨 권한으로 가족의 삶과 행복을 함부로 판단하나. 가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공동체인데, 피고인의 범행은 가정 파괴에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키는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사형 선고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재판부는 “2004년 이후 사형이 확정된 15건의 사건을 살피고 여러 양형 요소를 고려했다”며 “(사형 선고 사건은) 강도강간 등 중대 범죄와 살인죄가 결합해 있고 잔혹한 사건으로 이 사건과 차이가 있다. (피고인을) 엄중한 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사형에 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명백히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명복을 빈다”는 말과 함께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한편 이씨는 재판 내내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법원의 선고를 들은 뒤 퇴정했다.



최모란([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