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9시에 찾은 쿠팡 물류센터인 서울 구로구 구로1캠프. 10여 명의 ‘쿠친’(쿠팡 배송 직원)이 배송트럭에 택배 상자를 싣느라 분주했다. 권역 내 배송 지역(라우터) 3곳을 맡고 있다는 우모(40)씨는 “지난달에는 하루 평균 350~380개 정도를 배송했는데 이달 들어선 300개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배송 기사로 활동하는 김모(40)씨는 “라우터 2곳을 맡고 있는데 지난달엔 하루 평균 330~350건 정도 배송했는데 지난주는 290건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고 연말이라 물량이 쏟아질 시기인데 오히려 줄었다”고 말했다.
전날 찾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용인3캠프에선 신선제품 전용 택배 가방인 ‘로켓프레시’ 정리가 한창이었다. 쿠친 3년 차라는 이모(50)씨는 “보통 아파트 한 단지에서 20건 정도 수거하는데 지난주는 10~15건 수준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탈팡’(쿠팡 멤버십 생태계 탈퇴) 움직임은 현장에서도 체감할 수 있었다. 중앙일보가 서울 영등포·구로·금천구 등 서울 서부권과 경기도 용인시 물류센터 등 4곳을 방문해 쿠친 20명을 취재한 결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택배 물량이 10~20%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젊은 층이 모여 사는 오피스텔이나 원룸 밀집지역의 감소 폭이 더 컸다. 서울 관악구 배송을 맡은 이모(30)씨는 “지난달엔 하루 평균 400개 정도를 처리했는데 최근 50건 정도가 줄었다”며 “가족 단위 가구가 많은 보라매동은 10% 정도 감소했는데, 원룸이 많은 신림동은 택배 물량이 2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공지한 뒤에도 줄곧 이용자 감소 폭이 크지 않다는 입장을 이어왔다. 실제로 앱(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인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쿠팡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 추정치는 1484만 명으로, 지난 10월(1490만 명)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유통업계에선 DAU는 앱에 접속만 해도 집계되는 시스템이라 실제 이용자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쿠팡 사태 이후 경쟁업체 주문량은 늘었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12월(23일 기준) 주문량은 11월 같은 기간보다 10% 늘었다. 탈팡족을 흡수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쿠팡이 상대적으로 약한 초근거리 장보기 영역을 파고든다는 전략이다. 배달의민족은 지난 16일부터 B마트 전 매장에서 고객이 다음 날 배송 시간을 1시간 단위로 지정할 수 있는 ‘내일 예약’을 시작했다. 네이버도 롯데마트와 손잡고 원하는 시간에 배송비 없이(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회원 대상)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탈팡이 가시화하고 있지만,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두문불출이다. 김 의장은 2021년 한국 쿠팡 대표이사(등기이사)를 사임하고 모회사인 쿠팡Inc 의장직만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김 의장은 한국 쿠팡의 실질적 최고경영자(CEO)다. 실제 지난달까지 김 의장은 미국이나 대만 등에 머물면서 한국 쿠팡 임원들과 매일 화상회의를 하며 세세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회의를 중단하고 임시 한국 대표로 선임한 해럴드 로저스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쿠팡 관계자는 “매일 지시를 하던 사령탑이 사라진데다 외국인인 로저스 대표는 한국 정서나 문제가 커지는 배경에 대해 납득하지 못해 내부에서도 혼선인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