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서초전자공고로 개교했다가 2023년 교명을 바꾼 서울웹툰애니메이션고는 내년도 신입생 지원율이 300%를 넘겼다. 올해 서울 지역 직업계고(특성화·마이스터고)에서 가장 높다. 고이해 서울웹툰애니메이션고 기획홍보부장은 “기숙사가 없는 학교인데도 서울 강남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지원한다”고 전했다. 아직 졸업생은 없지만, 국내·외 웹툰 업체와 취업과 연계된 업무협약(MOU)을 계속 맺고 있어 내년에 상당히 높은 취업률을 기대하고 있다. ‘공부를 못하면 공고(현 직업계고)에 간다’는 건 옛말, 이젠 정반대로 특성화고에 떨어진 학생들이 일반고에 진학하는 상황이다.
24일 서울시교육청은 2026학년도 서울 직업계고 신입생 지원율이 126.8%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18.3%였던 전년과 비교해 8.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전국에서 지원한 학생들을 뽑고 전원 기숙사 생활에 학비가 무료인 마이스터고 4곳(수도전기공고·미림마이스터고·서울로봇고·서울도시과학기술고)은 모집 정원 540명에 863명이 지원해 지원율 159.8%를 기록했다. 2024·2025학년도에 이어 3년 연속 100% 이상의 충원율을 유지했다.
특성화고(67개교)는 모집 정원이 9752명에 1만2192명이 지원했다. 지원율은 전년 대비 9.1%포인트 오른 125%로 나타났다. 정동회 서울시교육청 진로직업교육과장은 “학생과 학부모의 진로 선택 기준이 단순한 진학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의 소질과 적성 기반의 ‘진로 설계형 선택’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특성화·마이스터고 지원율 상위에 속하는 교과군은 문화·예술·디자인·방송(138.5%), 미용(138.0%), 식품·조리(133.1%), 관광·레저(132.5%), 정보통신(118.7%)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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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특성화·마이스터고 1.3만 명 지원
다른 시·도도 비슷한 분위기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직업계고 충원율은 2022학년도 87.8%에서 2025학년도 92.7%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한국미래농업고(옛 경북 중모고), 한국철도고(옛 경북 영주고), 한국글로벌셰프고(옛 인천 삼량고) 등 일반고에서 특성화고로 전환한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거액 성과급 지급,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등으로 반도체 마이스터고에 관심이 커졌다. 충북반도체고·수원하이텍고 등 전국에 5곳이 운영 중인데 내년도 지원율이 250%를 넘긴 학교도 나왔다. 충북반도체고 고3 정지원군은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기계를 보다 능숙하게 다루고 싶어서 마이스터고에 지원했다”며 “반도체뿐 아니라 컴퓨터 언어를 배워 무인 카페에 들어가는 로봇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원하이텍고를 졸업한 뒤 모 반도체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정모(23)씨는 “대졸자와 임금 차이는 있지만 2~3년만 일해도 직장 근처에 원룸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된다”며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 아낀 학비와 그 기간에 받은 연봉을 감안하면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진우 교육부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무직보다는 현장에 나가 직접 손으로 장비를 다루고 제품을 만들 줄 아는 블루칼라 직업 교육에 학부모와 학생들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장명희 한성대 교학부총장(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장)은 “대기업이 신입사원 채용보다는 중소·중견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경력자를 선호하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에 맞춰서 직업계고에서 일찍 전문성을 확보해 경력을 개발한 뒤 입사 이후 대학 과정을 밟는 ‘선취업-후진학’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