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과 주요 해외 기관들이 한국의 내년 물가 전망을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달러당 원화값 하락이 시차를 두고 물가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2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달 중순 37곳이 제시한 내년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중간값은 2.0%로 나타났다. 11월 말 1.9%에서 보름 만에 0.1%포인트 상향됐다. 14곳이 전망치를 올렸고, 하향 조정은 3곳이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크레디아그리콜은 각각 1.8%에서 2.1%로 전망치를 상향했다. 노무라는 1.9%에서 2.1%, BNP파리바는 2.0%에서 2.1%로 조정했다. JP모건체이스 역시 1.3%에서 1.7%로 전망치를 높였다.
JP모건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둔화 효과가 달러당 원화값 하락의 지연된 파급 효과로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며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경우 수입 가격 상승을 통해 물가에 상방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의 판단도 비슷하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2026년 통화신용정책 운영 방향’ 보고서에서도 물가에 대한 경계 기조를 분명히 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 근방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면서도 “환율, 내수 회복세 등으로 물가 상방 압력이 예상보다 확대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기준금리 운용과 관련해서는 “향후 물가·성장 흐름 및 전망 경로 상의 불확실성,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가 인하 여부 및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의 내부 분석에 따르면 달러당 원화값이 내년까지 1470원 안팎의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까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평균적으로 원화가치가 10% 하락하면 물가가 0.3%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7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달러당 원화값 하락과 내수 회복을 근거로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1.9%에서 2.1%로 상향 조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7일 물가설명회에서 “높아진 환율(낮아진 원화가치)이 시차를 두고 다양한 품목의 물가로 전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앞으로의 물가 흐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환율과 물가에 대한 불안은 최근 소비 심리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은의 12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9.9로 전월보다 2.5포인트 하락했다. 비상계엄이 있었던 지난해 12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달러당 원화값 하락이 수입물가와 생활물가 전반에 반영될 것이란 인식이 확산하면서 체감 불안이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