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크리스마스 아침, 일본 최대 광고기획사 덴쓰(電通)에 입사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한 젊은 여성의 과로 사망 사건이 최근 일본의 노동 정책을 둘러싼 논란과 맞물리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인은 명문 도쿄대를 졸업한 뒤 2015년 4월 덴쓰에 입사한 다카하시 마쓰리로, 사망 당시 만 24세였다. 그는 극심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같은 해 12월 25일 도쿄에 위치한 덴쓰 사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에 앞서 다카하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업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호소했다. 그는 “하루 20시간 회사에 있으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게 된다”, “자고 싶은 것 외에는 감정을 잃어버렸다”, “며칠이나 잘 수 없는 정도의 노동량은 너무 이상하다” 등의 글을 남겼다.
사건 이후 노동 당국이 조사한 결과, 다카하시는 2015년 10월 9일부터 11월 7일까지 약 105시간의 초과 근무를 한 것으로 인정됐다. 특히 이틀 연속 53시간 동안 회사에 머물며 회사 밖으로 나온 시간이 17분에 불과했던 날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 당국은 덴쓰가 불법적인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며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당시 덴쓰 사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에 대한 제도 개선 논의가 본격화됐다.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두 번 다시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장시간 노동 문제에 대한 시정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일본은 2018년 초과 근무 시간을 월 최대 100시간, 연 720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일하는 방식의 개혁’ 관련 법을 도입했다.
25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즈오카현에 거주 중인 고인의 모친(62)은 전날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더 추진해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갖고 인생을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는 2024년에도 산업재해로 인정된 과로사와 과로 자살이 159명에 달해, 5년 만에 다시 150명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 기자회견 내용을 비중 있게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고인의 모친이 최근 장시간 노동을 용인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에 강한 위기감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정치권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지난 10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저 자신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을 버릴 것”이라며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해 갈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취임 후 국회 답변 준비를 이유로 새벽 3시에 출근하거나 수면 시간이 “대체로 2시간부터 길게는 4시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근로 시간 규제 완화 재검토에 의욕을 보이자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이후 그는 “결코 많은 국민에게 지나친 노동을 장려할 의도는 없고, 장시간 노동을 미덕으로 삼으려는 의도도 없으므로 부디 오해는 말아 달라”고 해명했다.
다카이치 내각에서 신설된 일본성장전략회의는 전날 열린 두 번째 회의에서 ‘노동시장개혁 분과회’를 설치하고 노동시간 규제 등에 대한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자리에서 “심신의 건강 유지와 종업원의 선택을 전제로 유연하고 다양한 근로방식을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낮 12시 기준 일본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 야후 메인 화면에는 다카하시의 사망 10주기와 다카이치 내각의 노동 정책 방향을 다룬 지지통신 기사가 주요 뉴스로 노출됐으며, 관련 기사에는 65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