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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카운터어택] 송성문을 MLB로 이끈 선후배의 ‘쓴소리’

중앙일보

2025.12.25 07:10 2025.12.2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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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 스포츠부 기자
지난 6월 8일,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던 내야수 송성문(29)은 취재진을 향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다 오해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 메이저리그(MLB) 한국인 스카우트의 입을 통해 ‘송성문이 올 시즌 뒤 빅리그에 도전한다’는 소문이 퍼진 뒤였다.

그는 진심으로 난감해했다. “다른 선수들처럼 막연하게 상상만 해본 게 전부예요. 제 나이, 제 실력에 MLB에 도전하는 건 비현실적이에요.” 주변에서 ‘실제 MLB 스카우트 몇몇이 높이 평가했다’고 전해도 그는 단호했다. “전 그냥 한국에서 열심히 할게요. 제가 MLB에 간다고 하면 팬들도 비웃으실 거예요.”

3주 뒤, 그를 보러 MLB 스카우트 여러 명이 고척돔을 찾았다. 송성문은 그 앞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쳤다. 이번엔 송성문도 조금은 생각이 바뀐 듯했다. “저를 좋게 봐주는 구단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고려해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서서히 기류가 달라졌다. 두 달 뒤인 8월 17일, 송성문은 마침내 이렇게 선언했다. “시즌이 끝나면 빅리그 진출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송성문의 마음을 돌린 건, 옛 동료들의 잔소리였다. 1년 선배인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은 “성문이는 늘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키움에서 함께 뛸 때 ‘정신 차려’라고 쓴소리도 많이 했다”고 했다. “MLB는 언감생심”이라는 송성문의 인터뷰를 보고, 김하성은 곧바로 연락했다. “밑져야 본전이다. 돈 주고도 못하는 경험이니 일단 시도는 해봐.” 2년 후배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거들었다. 그는 “형은 항상 포기가 빨랐다. 두 타석만 못 쳐도 금세 기가 죽곤 했다”며 “지금은 엄청난 노력 끝에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미국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마친 송성문은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하고 입단 환영 메시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두 빅리거의 지지를 얻은 송성문은 용기를 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MLB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신청했다. 5개 구단이 관심을 보인 끝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4년 총액 1500만 달러(약 222억원)에 그와 계약했다. 6개월 전까지 꿈도 못 꾸던 무대에, 김하성의 출발점인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송성문이 의미있는 첫발을 내딛게 됐다.

샌디에이고는 송성문을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영입했다. 주전 선수가 이탈했을 때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투입될 ‘조커’ 역할이다. 송성문은 “과거의 나는 경기에 출전하려면 여러 포지션을 오가야 했다”고 털어놨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 지금 그에게 큰 문을 열어준 거다.

빅리거 선후배에게서 의지의 자양분을 얻은 송성문은 이제 또 다른 대기만성형 선수들의 롤 모델로 우뚝 섰다. 그는 거듭 “나 같은 선수가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게, 다른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배영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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