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내년 초 개최를 예고한 9차 당 대회는 한반도 정세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향후 5년간 북한의 주요 전략 노선과 대내외 정책의 대강을 결정하는 당 대회 결정에 따라 한반도 안보의 주요 행위자인 북한의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북한은 당을 우선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여서 당이 결정하면 국가가 집행하는 구조다. 1980년대부터 북한의 노동당은 파행의 연속이었다. 김일성 시대의 노동당 규약은 5년마다 당 대회를 개최토록 했다. 그러나 북한은 1980년 제6차 당 대회 이후 36년 동안 당 대회를 열지 못했다. 김일성이 “인민 생활을 한 단계 더 높이고 7차 당 대회를 해야 한다”던 교시를 관철하지 못한 것이다. 인민생활을 한 단계 높인다는 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사는 인민의 숙원’을 실현하는 것으로, ‘사회주의 완전승리’ 단계를 뜻한다. 북한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3차 7개년 계획을 추진했지만 실패했고,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시기를 겪었다.
북한 내년 초 개최 9차 당 대회
‘김정은 주의’ 표명할지 관심
핵·상용무력 병진 땐 군비 경쟁
미련 남은 북·미 노선 변화 주목
김정은, 당 정상화에 주력 김일성의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도 경제적 난관에 따른 당의 파행적 운영은 이어졌다. 김정일이 제시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르면 수령은 뇌수, 당은 심장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당 대회를 열지 못해 심장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급기야 김정일은 노동당을 ‘노인당’, ‘송장당’이라고 비판하고, 군대를 앞세우는 ‘선군정치’를 통치방식으로 내세웠다. 김정일은 당의 주요의사결정 기구를 통하지 않고 측근 중심의 ‘직할통치’를 했다. 김정일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공개 연설을 하지 않아 외부 세계로부터 ‘은둔통치’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20대 후반에 권력을 잡은 김정은은 당의 기능 정상화를 통한 당-국가체제 복원, 즉 국가체제의 정상화에 주력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5년 단위로 당 대회를 개최하는 등 당과 국가의 주요 회의 일정을 당규약과 헌법에 따르고 있다. 북한은 2021년 개최한 8차 당 대회를 ‘분기점’이라고 규정했고, 지난 5년 동안 새시대 5대(정치·조직·사상·규율·작풍) 당 건설 노선 등 당의 권능과 위상을 강화하는 사업, 핵 무력 고도화 등 군사력 증강 사업, 지방발전 20?10 정책 등 인민 생활 향상 사업, 북·중·러 연대 강화 등에서 나름 성과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북한의 9차 당 대회는 북한이 주장하는 혁명과 건설을 위한 이념, 당면 목표, 주요 노선과 정책 등 향후 5년 북한을 전망할 수 있는 방향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적대적 두 국가’ 당 규약 반영도 관심 가장 큰 관심은 8차 당 대회 이후 추진했던 사업을 ‘총화(결산)’하고 변화된 정세를 반영한 지도 사상이 등장하느냐다. 유훈 통치라는 명목으로 아버지 시대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선대 지도자와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지도 사상인 ‘김일성-김정일 주의’에 더해 ‘김정은 주의’가 등장한다면 김정은의 홀로서기의 마침표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적대적 두 국가관계’와 관련한 당 규약 반영 등 대남·통일정책과 관련한 노선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김정은은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이번 당 대회에서는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 발전을 실현”한다는 기존의 ‘당면목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겠다는 ‘영토 평정’ 국시(國是) 문제, 통일·화해·동족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 등을 당 규약에 어떻게 반영하는지는 남북관계 복원을 추구하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 성공 여부와도 직결된다.
‘핵무력과 상용무력 병진정책 제시’ 등은 동북아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 김정은이 지난 9월 국방과학원 산하 기관 현지지도 때 “앞으로 당 제9차 대회는 국방건설분야에서 핵무력과 상용무력 병진정책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통해 드론 등 첨단 상용 무기의 위력을 경험했다. 핵무기 강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아 쿠르스크 지역을 점령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상용 무력의 중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첨단 상용무력을 보유하고 수출하며, 미국의 핵무기와 한국의 재래식 전력 통합(CNI)으로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은 북한이 핵무기의 ‘한계’를 느끼는 요소일 수 있다. 북한이 이번 당 대회에서 핵무력과 상용 무력 병진 정책을 제시하고, 첨단 무기 개발에 속도를 낼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군비 경쟁은 더욱 격화할 것이다. 한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에 박차를 가하자 김정은이 8700t급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 현장을 찾은 내용을 25일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미국과 일본 등의 북한이 전통적인 ‘숙적국가’로 여기는 나라들과 대외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후계자로 부상하고 있는 김주애와 관련한 당 차원의 움직임 등도 관전 포인트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 당원의 자격을 18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 만큼 김주애가 당장 당의 고위직을 맡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후계와 관련한 상징이나 은유적 표현이 등장할지는 향후 북한의 후계 구도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위기를 먹고사는 수령 체제 수령 체제는 위기를 먹고산다. 그런 만큼 북한은 한국·미국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김정은 체제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통한 사상이론적 조정이 이뤄질 때까지 당의 기본 노선에 획기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반도에서 군비경쟁 등 구조적 위기의 일상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트럼프의 ‘한반도 평화구상’과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구상이 타협해 이익의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 수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이번 당 대회에서 긴장과 위기를 고조하는 조치에 나서더라도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노선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년 4월 중·미 정상회담 전후에 열릴지 모르는 북·미 정상회담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