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빼면 지난 반년 동안 경제 운용에선 크게 세 가지가 두드러진다. 작심하고 돈을 풀었고(소비쿠폰 13조원 등), 기업 부담을 가중시켰으며(노란봉투법, 상법 등), 부동산 거래를 극단적으로 통제했다(10·15 대책 등).
그 결과가 반영된 경제 형편은 아주 좋지 않다. 수치를 살펴보자. ① 부동산.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월세는 부동산값이 폭등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더 뛰었다. 매매가는 19년 만에 최고로 상승했다(1~11월 8.04%). 초강력 규제인 10·15 대책에도 11월엔 5년여 만에 최대(전월 대비 1.72%)로 올랐다. 전세 매물이 급감했고, 월세 상승률은 올해 3%를 넘어섰다(11월까지 3.29%).
‘유능함’ 강조했던 정권의 반년
부동산, 환율, 일자리 문제 심각
포퓰리즘 기조 접고 기업 살려야
② 환율. 원-달러 환율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6월 초 1360원대에서 계속 상승해 11월에 1450원 선을 뚫고 올라갔다. 위기 아닌 상황에선 처음이다. 환율은 1480원 선 위로 치솟았다가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양도세 감면 발표가 나온 24일 1450원 밑으로 떨어졌다. 환율 급등(원화가치 급락)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휘발유, 식료품 등 생활 물가가 뛰고, 원자재·부품을 수입해 쓰는 기업들이 경영난에 처했다.
③ 일자리. 청년층 취업난이 특히 심각하다. 15~29세 고용률은 19개월 연속 하락했다(11월 44.3%). 실업자·취업준비자·‘쉬었음’ 등 고용 상태가 아닌 20·30이 11월 기준 약 160만 명, 이 연령층의 12.7%나 된다. 구직 활동을 아예 접고 ‘쉬고 있는’ 20·30은 71만9000명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다.
이재명 정권은 ‘유능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6개월 경제 성적표는 처참하다. 경제 수치는 거짓말을 안 한다. 부동산은 폭등했고, 환율은 급등했으며, 일자리는 태부족하다. 정부의 경제 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첫째, 기업 정책의 오류다. 김대중 정부(진보 정권)의 외환위기 극복, 이명박 정부(보수 정권)의 금융위기 극복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기업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현 정권에서 기업 살리기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기업 위에 노조, 주식 투자자가 있다. 그 실상이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이다. 법인세 인상도 단적인 사례다.
둘째, 부동산은 수요 통제, 특히 대출 통제로 잡히지 않는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있다. 부동산을 대출 규제로 잡으려 들수록 현금 부자들만 좋아지고, 자산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토지거래 허가 등 매매 규제가 전월세 공급 감소를 불렀고, 서민 무주택자들이 유탄을 맞았다. 주택 공급을 보다 과감하게 서둘러야 한다.
셋째, 환율 문제의 핵심엔 정부와 시장의 인식 괴리가 있다. 트리거는 한·미 관세 협상이었다. 연간 200억 달러를 10년간 미국에 투자해야 하게 되면서 시장에선 달러 공급 부족 우려가 팽배했는데, 정부는 간과했다. 외환보유액(11월 4306억 달러)이 충분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게다가 미국 금리가 더 높고, 미국 증시 수익률이 더 좋다. 시장엔 달러 수요가 더 늘고 환율이 더 오를 거란 기대심리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결국 우리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투자 수익성이 좋아질 것이란 확신, 정부의 경제 운용에 대한 신뢰가 생겨야 국내외 자본의 ‘탈(脫)한국’ 흐름이 멈추고 환율이 잡힌다.
넷째, 포퓰리즘으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 그건 분칠에 불과하다. 13조원의 소비쿠폰은 소비를 진작시키지 못하고 나라 곳간만 축냈다. 재정의 방만한 운용은 물가도, 금리도 불안하게 할 뿐이다.
6개월은 정권의 실력을 보여주기에 짧은 기간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경제 운용의 철학과 기조가 잘못됐다면 상황은 나아지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권이 경제 살리기에 진심임을 입증해야 한다. 경제의 발목을 잡는 시장 통제, 친노조, 포퓰리즘과 결별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