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한 자는 결코 이기지 못한다’는 격언은 수정돼야 한다. 알리사 리우(20·사진)를 보면 그렇다.
13세에 미국 최연소 피겨 챔피언에 등극했던 리우는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7위에 그쳤다. 가디언, NBC 등에 따르면, 리우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을 겪으며 아이스링크 위에 누워 ‘내가 이 스포츠에서 원하는 건 뭘까’라고 생각했다. 피겨가 해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지며 ‘번아웃’이 찾아온 것이다. 2022년 4월, 리우는 16세의 나이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 리우가 지난 6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에서 222.49점으로 우승했다. 리우는 앞서 지난 3월 보스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하면서, 올림픽 직전 해에 열린 가장 큰 2개 대회를 모두 제패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40여 일 앞두고, 리우는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리우는 3년 전 은퇴 후 평범한 10대 소녀로 살기로 결심했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운전면허를 따 네 명의 동생들을 등교 시키기도 했다. 중국 출신인 리우의 아버지는 1989년 ‘천안문 사태’가 터지자 미국으로 건너와 변호사가 됐고, 난자 기증과 대리모를 통해 5남매를 얻었는데 리우가 장녀다.
리우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고, 2023년 UCLA에 입학해 심리학을 공부했다. 어느 날 스키장에 갔다가 살결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가 스케이트를 탈 때의 느낌과 비슷하게 여겨졌고, 자신이 다시 링크로 돌아가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코치였던 필립 디구글리엘모에게 화상 전화를 걸어 복귀하겠다고 알렸고, 2023년 12월 옷장 속에 넣어뒀던 스케이트를 다시 꺼냈다.
트리플 악셀(3회전 반)과 쿼드러플(4회전) 러츠를 반복하면서 생겼던 고관절 문제는 18개월간 스케이트를 타지 않은 사이에 서서히 사라졌다. 리우는 지난해 10월 부다페스트 트로피 우승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완벽함’보다는 ‘행복’을 중시했고, ‘우승’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케이팅’ 자체를 즐겼다. 머리도 더 이상 단정하게 묶지 않고 포니테일로 연출했고, 배경곡으로 파격적인 레이디 가가 노래를 쓰기도 했다. 스포츠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에 따르면 지난 3월 세계선수권대회 점수를 확인한 뒤 코치가 “재미있었니?”라고 묻자 리우는 활짝 웃으며 “Yeah”라고 답했다고 한다. 리우는 최근 NBC의 ‘지미 팰런쇼’에 출연해 특유의 발랄함을 뽐냈다.
리우는 지난 15일 SNS에 ‘트리플 악셀’을 성공하는 영상을 올렸다. 왼발을 축으로 전방을 향해 도약해 3바퀴 반을 돌아 착지하는 그의 필살기다. 그는 내년 2월 올림픽에서 일본의 사카모토 카오리와 나카이 아미, 개인중립선수로 참가하는 러시아의 아델리아 페트로시안과 금메달을 다툴 전망이다.
‘친한파’로 유명한 리우는 베이징 올림픽 갈라쇼에서 케이팝 걸그룹 ITZY의 LOCO를 선곡했다. 당시 중국은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한창인 시기였다. 또 리우는 SNS에 제니의 ‘like jennie’ 춤 영상도 올렸다. 자격 정지 징계로 1년간 빙판을 떠났던 한국 피겨 국가대표 이해인은 “리우는 공백기가 있었는데도 기량이 더 좋아졌다”며 “그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