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공장 설립은 당장의 실제적인 근로조건의 변동을 초래하지 않아서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하청 스스로 휴일 등 근무 일수가 변경이 어려운 경우 계약 외 사용자(원청 사용자)도 교섭 당사자가 된다.”
26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현장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해석지침에 담긴 내용이다. 전자에는 노동계가, 후자에는 경영계가 반발하고 있다. 해석지침은 법적 구속력도 없다. 당사자인 노사 모두가 이에 반발하면서 전문가들은 시행 이후 야기될 갈등과 혼란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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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사용자? "여전히 모호"
노란봉투법은 교섭 상대방이 되는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교섭 대상이 되는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대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누구를 사용자로 볼 것인지, 또 어디까지를 노동쟁의 대상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법에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내년 3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사용자와 쟁의 대상의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개했다.
그러나 노동부가 40쪽이 넘는 해석지침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은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를 교섭 당사자인 이른바 ‘진짜 사용자’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 실질적 지배력을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가진 주체로 보되, 여기에 원청 사업에의 편입 여부나 경제적 종속성 등을 보완적인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문제는 ‘구조적 통제’라는 개념 역시 ‘실질적·구체적 지배력’만큼이나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다시 구조적 통제라는 또 다른 개념으로 설명한 만큼, 현장의 모호성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가 제시한 원청이 하청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는 사례는 계약 내용을 통해 하청의 영업 일수나 운영 방식을 사실상 결정하는 경우다. 계약을 따르지 않으면 해지가 가능해 하청이나 근로자가 근무 조건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울 때다. 또 하청 근로자의 작업 시간이 작업 물량이나 원청이 관리하는 물류 차량, 설비, 지원 인력 투입 규모 등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도 구조적 통제로 판단했다.
경영계는 이 부분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구조적 통제의 예시로 ‘계약 미준수시 도급·위수탁 계약의 해지 가능 여부’를 들고 있는데, 도급계약에서 일반적인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계약 해지도 구조적 통제 대상이 된다고 오해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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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반대 파업 가능, 해외 공장 신설은 안 돼
노란봉투법의 또 다른 쟁점은 노동쟁의 대상 범위의 확대다. 그동안 정리해고 등 이른바 ‘사업상의 결정’은 노동쟁의 대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조법 제2조 제5호 개정으로 ‘근로조건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까지 쟁의 대상으로 포함되면서, 해외 공장 신설과 같은 주요 경영 판단마저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경영계에서 제기돼 왔다.
지침에 따르면 노조는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이 이뤄질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해도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아울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 신설 요구, 정년연장 관련 기준 설정 요구 등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합병·분할·매각·양도·해외투자 등 사업경영상 결정도 그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향후 이에 따른 정리해고·구조조정은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다만 해석지침에선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경영상 결정에 대해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동을 초래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추상적이거나 잠재적인 수준에 그칠 경우에는 노동쟁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해외 공장 건설처럼 향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당장의 변동이 없다면 이를 이유로 파업이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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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라인 법원 판단에 뒤집히면 더 큰 혼란
노동계는 “전반적으로 해석지침은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을 찾아가는 데 활용하기보다는 사용자들이 사용자성을 지우는 안내서로 활용될 우려가 더 커 보인다”고 반발했다.
문제는 노동부의 이번 판단이 향후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을 갖지 않는다. 법을 개정한 것이 아니라 노동부가 자체적으로 제시한 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노사 모두 가이드라인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만약 향후 법원이 해석 지침과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현장의 혼란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통상임금 역시 노동부가 해석지침을 제시했지만, 8년 만에 정반대의 판례가 나왔다”며 “이번 가이드라인 역시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용을 갖지 못할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졸속 입법’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준희 광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법임에도 불구하고,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한 상태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됐다”며 “사실상 입법 단계에서 비롯된 문제로, 정부가 추가로 손쓸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아 현장의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