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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 논란 트럼프급 전함은 김정일 브로맨스? 레이건 오마주? [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2025.12.26 12:00 2025.12.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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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자랑한 ‘트럼프급 전함’이 건조하기도 전에 암초를 만났다. 미국 안팎에서 ‘시대착오’라는 비판이 일면서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급 전함 그래픽. 미 해군



전함의 전성시대가 끝난 이유는


20세기, 엄밀히 말하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가 전함(Battleship)의 전성기였다. 당시 전함을 몇 척 가졌느냐가 국력의 척도로 여겨질 정도였다.

1945년 4월 7일 오키나와 해전에서 미국 해군 함재기가 투하한 폭탄이 일본 해군의 전함 야마토함 가까운 거리에서 터지고 있다. 이날 야마토함이 침몰했다. 미 해군

1908년 영국이 내놓은 드레드노트(Dreadnought)급(만재 배수량 2만 1000t)이 서막을 열었다.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12인치(305㎜) 주포 2문을 묶은 포탑을 5개나 갖췄다. 선체 장갑은 가장 두꺼운 부분이 279㎜였다. 그런데도 최고 속도가 21노트(시속 39㎞)였다.

해안 요새도 단신으로 깨버릴 만한 전투력이었다. 전함의 존재 자체가 적을 위압했다. 그래서 함포외교(Gun Diplomacy)의 선봉엔 전함이 섰고, 전함이 억제력을 상징했다.

그리고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전함은 더 커지면서, 장갑은 더 두꺼워졌고, 함포는 더 세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야마토(大和)급 전함의 만재 배수량은 7만 2000t이었다. 영국의 현재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급(8만t)보다 약간 작은 덩치다. 야마토급의 주포는 18.1인치(460㎜) 3연장 주포탑 3기(모두 9문)이었고, 측면장갑의 두께는 410㎜였다. 그런데도 최고 27노트(시속 50㎞)로 움직일 수 있었다.

김경진 기자

그러나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전함 앞에 ‘천적’이 나타났다. 항공기였다. 특히 항모에서 내보낸 함재기였다. 항공기의 어뢰와 폭탄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2차대전 주요 해전에서 각국이 자랑하던 전함들이 항공기에 속속 당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함재기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해 미 해군의 전함 4척을 침몰시킨 게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1941년 5월 독일의 비스마르크함(5만t), 그해 12월 영국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4만 3000t), 1944년 10월 일본의 무사시함(7만 2000t)과 1945년 4월 야마토함(7만 2000t)이 공습을 받고 격침했다.

전쟁이 끝나자 강대국들은 전함을 은퇴시켰다. 건조비와 운용비가 엄청난 데다 딱히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뱅가드함(5만 20000t)은 1944년 11월 30일 진수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1년이 지난 1946년 5월 12일에서야 취역했다. 왕실 요트와 함대 기함으로 쓰이다 1960년 6월 7일 퇴역하면서 짧은 ‘함생’을 마쳤다.

코마급 미사일 고속정에서 P-15 테르밋(나토명 스틱스)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Naval Gazing

전함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 있었다. 1967년 10월 21일 이집트의 코마급 미사일 고속정에서 발사한 P-15 테르밋(나토명 스틱스)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구축함 에일라트함을 격침했다. 이제 전함을 비롯한 수상함이 가장 두려워할 상대는 미사일로 바뀌었다. 미사일이 함재기와 결합하면 전함은 ‘고양이 앞에 쥐’ 신세였다.



최신 항공모함 1척 가격의 전함


이처럼 구닥다리 전함을 되살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미국은 물론 세계가 경악했다. 미국의 가상 ‘주적’인 중국은 미 해군 항모 전단을 상대하려고 대함 미사일을 촘촘히 깔아놨는데, 트럼프급 전함은 자칫 커다란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라서다.

김경진 기자

이 밖에도 미국의 조야가 트럼프급 전함을 반대한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2년 반 안에 건조를 착수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미국의 조선 능력으론 턱도 없는 얘기다. 미국의 양대 조선소인 HII 잉걸스와 GD 배스 아이언 웍스는 1년에 구축함을 연간 최대 3척을 지을 능력을 지녔다고 밝히지만, 연간 진수량은 1~2척이었다. 3척도 정부 예산으로 기존 설비를 최신화하고, 인력을 충원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기존 발주량도 소화 못 하는 상황인데, 신규 주문은 꿈도 못 꾼다. 미국 해군은 군사 전문 매체인 워존에 “2030년대 초반에야 건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인했다. 2030년대 초반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2029년 1월 20일) 이후 일이다. 그가 물러난 뒤에도 트럼프급 전함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미 해군이 트럼프급 전함의 주요 무기로 소개한 레일건도 문제다. 레일건은 전자기 유도로 금속 탄자를 전자기력으로 가속해 발사하는 포다. 원리는 이렇다. 두 줄의 금속 레일에 전류를 흘려보내면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이 레일 위에 올려진 발사체는 자기장의 힘을 받아 앞쪽으로 날아가려는 힘이 발생한다. 물리학 시간에서 배운 ‘플레밍의 왼손법칙’이다.

당초 총알보다 빠른 마하 7(시속 8568㎞)의 날아가는 금속 탄자는 200㎞ 이상 떨어진 목표물도 운동 에너지만으로도 파괴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

미 해군은 레일건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기술적 난제가 있었다. 전력 소모가 커 충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분당 발사 속도가 기대치(10발)에 훨씬 못 미치는 4.8발 수준이었다. 발열과 진동이 심해 포신이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미 해군은 2021년 7월 레일건 개발을 포기했다.

트럼프급 전함에 레일건을 달려면, 이미 접은 개발 사업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막대한 개발비를 쏟아부어야 하고, 개발 기간도 장담할 수 없다.

한 해 국방비가 1000조 달러(약 143경원)에 가깝다고 해서 ‘천조국’이라 불린 미국도 트럼프급 전함의 천문학적 건조비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미 미시간 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조너선 페이지 교수는 군사 전문 매체인 브레이킹디펜스와 인터뷰에 트럼프급 전함 건조비를 40억(약 5조 7000억원)~45억(약 6조 4000억원) 달러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는 공식 발표 이전의 일로 페이지 교수는 트럼프급 전함을 1만 5000~2만t 규모로 가정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건조비를 1척당 91억 달러(약 13조원)로 예상했다. 앞서 미 의회 예산국(CBO)은 미 해군의 차기 구축함 DDG(X)의 건조비를 1t당 30만 달러로 추산했다. 이 계산을 규모의 경제(대량 생산에 따른 단가 절감)를 일부 감안해 적용하면 트럼프급 전함은 1척에 91억 달러로 나온다.

초도함(1번 함)의 경우 평균 비용보다 50% 정도 더 비싸다. 그래서 트럼프급 전함 초도함 건조비는 135억 달러(약 19조원)까지 오른다. 이는 최신 포드급 항모의 건조비(137억 달러)와 맞먹는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레이건을 따라 했나


미 해군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 황금함대(Golden Fleet)’ 웹사이트를 열었다. 미 해군은 여기서 트럼프급 전함의 주요 임무를 ▶전력 투사(Power Projection) ▶공격적 타격(Offensive Strike) ▶통합 방공·미사일 방어(IAMD)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도자료엔 핵탄두 탑재 해상 발사 순항미사일(SLCM-N)로 무장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급 전함 그래픽. 미 해군

SLCM-N도 막 개발을 시작한 무기다. 지난 8월 22일에서야 미 해군이 SLCM-N 개념설계 업체 5곳을 선정했다. SLCM-N은 W76-2와 같은 저위력 핵탄두를 단 순항미사일이다. W76-2의 위력은 5㏏(1㏏은 TNT 1000t의 폭발력) 정도다. 전술핵급 위력이다. 참고로 히로시마(廣島) 원자폭탄의 위력은 15㏏이다.

미국은 전략원자력잠수함(SSBN)의 일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UGM-133 트라이던트 Ⅱ의 탄두를 W76-2로 바꿨다. 러시아의 전술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면서, 북한과 이란이 지하에 만들어놓은 핵·미사일 관련 시설을 공격하는 용도에서다. 트라이던트를 발사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핵전쟁 개전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인 2018년 핵태세 보고서(NPR)에서 수상함이나 잠수함에서 쏘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에 탑재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게 SLCM-N이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2년 NPR에서 SLCM-N 개발을 폐기했다. 이미 W76-2 탑재 SLBM으로 억제력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주당의 비확산 기조를 반영한 조처였다. 미 의회가 SLCM-N의 폐기를 막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SLCM-N이 되살아났다. 위력을 5~150㏏에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W80 Mod 4가 SLCM-N의 핵탄두로 예정됐다.

앤드류 C. 웨버 전략위기 위원회(CSR) 선임 연구위원은 군사 전문 매체인 디펜스원과의 인터뷰에서 “적(중국이라 러시아)이 전술핵을 쓴다면, 미국은 적이 압도적인 보복(전략핵 보복)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해야 억제력이 발휘한다”며 기존 핵 3축인 전략폭격기·대륙간탄도미사일(ICBM)·SLBM의 현대화에 더 투자할 것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트럼프급 전함에 집착할까. 지난 22일 황금함대 계획 발표에 단서가 있다. 그는 발표장에 입장한 뒤 트럼프급 전함 예상도를 보면서 “아름답다(beautiful)”이라고 연달아 감탄했다. 이어 특유의 속사포 말투를 이어갔다.

" 우리는 과거에 아이오와함, 미주리함, 위스콘신함, 앨라배마함 등 많은 전함을 건조했다. 우리는 거대한(big) 전함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새로 만들 전함들은 그보다 더 클(bigger) 것이다. 그리고 이 전함들은 전력과 위력이 100배에 달할 것이며, 지금까지 이런 함정은 존재한 적이 없다. 이러한 함정들은 오랫동안 설계 단계에서 검토됐고, 내가 첫 번째 임기 때 “왜 예전처럼 전함을 만들지 않는가”라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전함들은 세계 최고가 될 것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크며(biggest), 지금까지 건조된 어떤 전함보다도 압도적으로—100배 더 강력할 것이다. 아이오와함, 미주리함, 위스콘신함, 앨라배마함 등을 보면 크기가 대체로 비슷했고, 일부는 다른 함정보다 약간 더 컸을(bigger) 뿐이다. 그러나 그중 가장 큰 전함과 비교해도, 새 전함은 100배 더 강력하다. 길이는 조금 더 길어지지만, 전체적으로 더 크고(bigger), 더 커서(bigger) 더 많은 것을 탑재할 수 있다. 그들은 이를 ‘치명성(lethality)’이라고 부른다. 전함은 해상 전투를 위해 특별히 설계한 함정 가운데 가장 크고(largest), 가장 견고하며, 가장 중무장한 함정이다. "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선 ‘크다 = 세다 = 아름답다’는 3단 논법이 작동하는 듯 보인다.

트럼프급 전함의 과도한 무장은 기형적이다. 좌우에 한 문씩 단 5인치(127㎜) 함포가 대표적이다. 또 트럼프급 전함의 SLCM-N 탑재는 5000t급 선체에 핵 탑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욱여넣은 북한의 최현급 구축함을 연상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 “난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롤 모델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오마주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원조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소련과의 냉전이 가장 치열했던 1980년대 초반 전체 함대 규모를 600척으로 늘린다는 명분 아래 퇴역한 아이오와급 전함 4척을 재취역했다. 아이오와급 미주리함(BB 61)과 위스콘신함(BB 64)은 걸프 전쟁에 참가해 16인치(406㎜) 함포로 가공할 화력을 지원했다.

어떤 이유에서간 트럼프급 전함은 미 해군의 건함 계획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미 해군은 1980년대 취역한 이지스함인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과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초기함을 대체하는 1만 3500t DDG(X)를 계획했다. 그런데 트럼프급 전함이 끼어들면서 DDG(X) 사업은 사실상 전면중지 상태다. 해군의 건함은 오랜 시간 많은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 번 삐끗한다면 피해가 막심해진다.

미국 해군의 전함 아이오와함(BB 61)이 16인지 주포 9문과 5인치 부포 6문을 일제사격하고 있다. 이 같은 장면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 해군

언제 바다에서 순항 중인 트럼프급 전함을 볼 수 있을까. 아니 트럼프급 전함을 볼 수나 있을까.



이철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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