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한 초등학교의 A교장은 올해 중순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를 당했다. 사전 약속 없이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는 "아이가 교장에게 폭언을 들어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한다"며 화부터 냈다. 하지만 A교장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해당 학생을 직접 만나 상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고소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그는 한국교총(교원단체)의 법률 조력을 받아가며 3개월 간 학생에게 폭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결국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A교장은 이 과정에서 얻은 스트레스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A교장은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한 '치유·회복' 연수에 참여했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각종 교육활동 침해 사건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학교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를 제주도에서 진행했다. 교장 대상 연수는 지난달 26~28일, 교감 연수는 19~21일 실시됐다.
서울교육청이 평교사 중심의 치유·회복 연수를 교장·교감 등 학교관리자에게 확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와 올해 1학기엔 평교사만을 대상으로 각각 110명, 150명 규모로 진행했다.
일선 학교의 관리자인 교장·교감들이 겪는 정서적 소진이 더는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인식 때문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학교 현장은 학부모로부터 제기되는 민원 등으로 피로도가 높은 상황인데, 특히 학교 운영을 총괄하는 교장·교감은 최종 결정 부담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고립된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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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보고', 아래로는 '보호'"…교권침해 사각지대된 교장·교감
실제로 교장·교감은 교권 위기의 '최전선'에 서있다. 학교 관리자로써 갈수록 첨예화하는 학교와 학생·학부모 간 갈등에 개입해야 한다. 지난달 서울교육청의 치유 연수에 참여했던 B교감은 “학부모 대부분은 일단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교장·교감 나오라’는 식이다. 학교폭력같은 사건이 생기면 곧장 변호사를 대동해 상대방에 대한 접근금지, 등·하교 제한을 요구하는 등 갈등을 극단적으로 몰고간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다 보니 학생들까지 ‘선생님 선 넘었는데요’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한다"며 "(내가 맡은) 직책이라 감당해야 한다지만 이젠 정신적 한계가 왔다”고 털어놨다.
교권침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생긴다. 지난해 6월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선 3학년생이 무단 조퇴를 제지하던 이 학교 교감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학생은 “감옥에나 가라”, “(나를) 따라오면 죽음” 등의 폭언을 했다. 교권침해는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교육활동 침해 등으로 인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개최 건수는 2020학년도 1197건, 2021년 2269건, 2022년 3035건, 2023년 5050건으로 늘었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듬해인 2024년엔 다소 줄어든 4234건, 2025년 1학기엔 2189건이 개최됐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보호 강화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되레 교장·교감의 업무 부담은 커진 측면도 있다. 2023년 9월 '교권5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원지위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교권침해에 교사를 보호하려는 제도적 장치 등이 도입됐다.
하지만 평교사와 달리 교장·교감은 보호 대상보다는 상급기관인 교육청에 대한 보고자이자 학부모 민원의 '해결사' 역할로 인식되고 있다. A교장은 “서이초 사건 이후 일선 교실에선 수업방해 등 통상적인 지도로 끝날 수 있는 일도 이젠 '매뉴얼'에 따라야 해, 교장·교감이 나서야 하는 일이 잦다”며 "위로는 (사건에 대한) 보고, 아래로는 (평교사) 보호 등 책임이 과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치유·회복 연수 참여자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연수에 참여한 C교장은 “너무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학교를 잠시 벗어난 것만으로 충전이 됐다”며 “평소 만날 기회가 없던 다른 학교 교장·교감들을 만나 고충을 나누다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고 느낀 게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학교관리자의 몸과 마음이 소진된다는 건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전체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라며 “향후 선생님들과 교장·교감선생님들의 교육활동이 보호될 수 있도록 세심히 살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