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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금…그래도 18년째 도망 못가요" 그 섬 의사의 뱃길 [길, 올해와 새해를 잇다]

중앙일보

2025.12.26 13:00 2025.12.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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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길.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고속철도 동맥경화를 뚫는 길”(라승혁 평택~오송 2복선화 5공구 현장소장) “낙도 의료는 내가 가야 할 길”(최명석 신안대우병원장) “행정소송만이 손쓸 길”(최일도 목사). 이들이 말한 길은 각각 교통·행동규범·방도를 의미합니다.

10×10. 교통으로서의 길 중 남북 7축과 동서 9축의 간선도로망은 2030년까지 이렇게 늘어납니다. 그중 하나가 함양울산고속도로입니다. 한강 밑으론 고속도로도 뚫립니다. 그리고 시속 400㎞. 꽉 막힌 평택~오송 고속철도 구간을 이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됩니다. 중앙SUNDAY는 길을 닦는 그 현장들을 찾았습니다.

또 다른 길. 고속국도가 일반국도·지방도와 연결되듯 새 길을 여는 현장은 사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저마다의 길을 닦고 있었습니다. 뱃길이고 하늘길이며 외길이기도 했습니다. 가시밭길을 걸어온 이도 있고 고생길 훤해도 꽃길을 마다한 이도 있었습니다. “박수받을 때 내려와 새로운 길을 찾는다”(오순희 한국여성산악회장) “나도 힘들었기에 길에서 인생 상담도 해준다”(정재섭 명품시계 수리 전문가).

유턴도, 우회도 몰라라 하고 일방통행이 횡행하는 시대. 길에서 만난 이들은 우리에게 신호등을 깜빡이는 것 같았습니다. 2025년에서 2026년으로 가는 길목. 그렇게 길은 또다시 이어집니다.

KTX 평택~오송 2복선화 5공구 공사에 투입된 TBM(Tunnel Boring Machine). 운행 중인 기존 고속철로 바로 옆을 끼고 터널을 뚫기에 진동이 적고 소음을 최소화한 TBM 공법을 적용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
체증 뚫는 고속철길=지난 14일 오전. 목포행 KTX 13호차와 14호차 사이엔 9명의 ‘입석’ 손님이 있었다. 열차표는 늘 매진에 매진이다.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빚은 결과다. 열차 운행 횟수를 늘리면 해결되겠지만 평택~오송 병목 구간이 막고 있다.

이곳 46.9㎞에 ‘2복선화’ 사업이 한창이다. 총사업비는 4조4800억원. 그중 공사 구간 9㎞인 5공구에선 직경 11m, 길이 148m의 TBM(Tunnel Boring Machine)이 조립을 마치고 최종 점검 중이었다. 헤드의 66개 커터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며 암반과 토사를 뚫는 방식이다. 운행 중인 기존 고속철로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한 공법을 도입한 것. 5공구 터널 구간 6.1㎞ 중 2482m가 TBM으로 뚫린다. TBM은 장비가 크다 보니 보관이 어려워 헤드 부분만 빼고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침 바통 터치하는 육상선수처럼 공사 기간이 맞아떨어져 GTX-A 구간에서 사용 후 재사용 중이다.

고속철도 평택~오송 구간 2복선화 5공구 공사가 한창이다. 백규상 감리단장(오른쪽·서현)과 라승혁 현장소장(쌍용건설)이 원격 모니터링 화면 앞에서 공사를 설명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
평택~오송 2복선화가 2028년 말 완료되면 고속철도 운행 횟수는 하루 190회에서 380회로, 이용객 수용도 2배 이상 늘어난다. 시속 370㎞의 차세대 고속열차(EMU-370)도 달릴 수 있는 선로가 들어선다. 백규상(사진) 감리단장은 “인공지능(AI) 기반 CCTV를 중심으로 실시간 유해가스 감지기, 출입자 위치 추적 비컨, 장비 접근 경고 시스템 등 ‘스마트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섬 주민 6300명 아픈 곳 다 알아…서울 병원 갈 차비도 드려요"
그 섬 의사의 뱃길=지난 14일. 노래 제목 그대로 비 내리는 호남선. 가수 손인호의 노랫말이 가슴 속에 선로를 그려놓을 즈음.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목포역에 도착합니다.” 다음날 국도 2호선 천사대교. 길이 7.26㎞로 국내 최초의 사장교 반, 현수교 반 다리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섬 9개, 이른바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를 잇는다. 배에 올라 바닷길 40분. 이렇게 목포에서 2시간 걸려 도착한 곳이 전남 신안군 비금도다. 뜬금없이 제법 큰 병원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신안대우병원.

최명석 신안대우병원장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18년째 의술을 펼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어처크름 여게까징 오셨으까.” 최명석(64·사진) 병원장의 인사가 걸쭉하다. 최 원장은 지난 9일 김우중의료인상을 받았다.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30년간 도서·오지 의료에 매진한 정신을 기려 2021년 제정한 상이다.


Q : 2008년부터 병원을 운영하셨죠.
A : “저보다 앞선 세 팀이 평균 2년을 못 버티더라고요. 천사대교 건너오셨죠 ? 2019년 완공되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그전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왔어요. 배가 못 뜨는 날이 많아 고립감이 심했죠. 저도 도망가고 싶었는데 제 뒤에 온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어어, 하다가 18년이 됐습니다(웃음).”

최 원장은 인터뷰 대부분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그러다 눈을 번쩍 뜰 때가 몇 번 있었다. “사명감 없인 일 못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가 그중 한 번이었다.


Q : 다리로 연결된 도초도 환자도 돌보시죠.
A : “네. 6300여 명입니다. 누가 어디 아픈지 다 알아요. 눈이 나빠 ? 서울의 S병원에 가라고 합니다. 차비가 없다 ? 제가 드립니다. 오히려 작은 음료수 같은 선물이 돌아옵니다. 이런 작은 정 때문이라도 떠날 수가 없어요.”


Q : 먼 곳입니다. 안타까울 때도 있을 텐데요.
A : “제가 심장흉부 전문의입니다. 어느 정도 응급에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를 벗어나면 속수무책입니다. 골든타임을 놓친 적도 있어요. 가슴이 아픕니다. 정부가 기초자치단체마다 한 곳씩 의료 취약지 거점병원을 지정해 줘야 합니다. 관련 법률도 있고요.”


Q : 이제 하늘에는 닥터헬기가 뜨고 땅에서는 119와 이어진다. 최 원장은 “그런데 바다, 특히 바람 불고 어둠이 내린 바다에선 헬기도 못 뜨니 씨(sea) 앰뷸런스 도입이 시급하다”고 했다.
A : “햇빛연금과 바람연금·농어촌기본소득 덕분인지 인구 4만 명을 회복하긴 했지만 신안은 여전히 인구소멸 위험 지역입니다. 65세 이상이 40%에 육박하고요. 일찍 일어나시는 어르신 따라 병원도 오전 7시에 열어요. 월화수목금금금 일하고 잠도 병원 2층에서 잡니다. 가족은 . 미안해서 못 데려왔어요. 2주에 한 번씩 토요일 점심 먹고 가족이 있는 광주로 퇴근해 일요일 점심 먹고 출근합니다. 어제처럼 배가 못 뜨면 한 달 내내 여기서 지내기도 해요. 삼겹살 구워 먹으며 버팁니다(웃음).” 최 원장이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제가 18년간 걸어온 길이고,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라면서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김포~파주 한강 하저터널 공사 현장. TBM이 굴진을 하면 상부에 세그먼트(콘크리트 조각)를 고정시켜 터널을 지탱하고, 하단에는 인버트박스(도로 포장 하부 구조물)을 설치한다. 인버트박스 위는 도로가 되고, 밑의 공간은 재난 시 비상 통로가 된다. 멀리 보이는 반원 형태의 푸른 선이 한강 시작점이다. 김홍준 기자
한강 밑 35m 터널길=천사대교가 있는 국도 2호선과 겹치는 국도 77호선. 국내 최장 도로다. 부산에서 남·서해안 섬과 도시들을 대부분 훑고 자유로를 밟아 파주까지 무려 710㎞ 이어진다. 다른 도로와 중복된 곳까지 합치면 1260㎞가 넘는다. 여름휴가 내내 이곳을 달리는 ‘찐’ 여행객들도 적잖다.

77번 국도가 끝나는 파주에는 다른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다. 5개 공구 중 제2공구. 직경 14m, 길이 125m의 TBM이 돌아가고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다. 한강 밑으로 김포까지 2.98㎞ 터널을 만든다. 우리나라 첫 ‘TBM 도로 터널’이다. 지난 19일 현재 TBM 공사 구간 2860m 중 2667m를 뚫었다. 한강 너머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작업자들이 매일 받는 가상체험(VR) 안전교육 뒤 2600m 구간까지 들어가 봤다. TBM의 소음과 진동은 거의 없었다. 헤드에 달린 70개의 커터는 휴일 없이 돌고 돌아 하루 평균 5m를 굴진 중이다.

황우주 한국도로공사 김포파주건설사업단 팀장이 김포~파주 한강 하저터널 입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터널 좌측은 파주행 상행선, 우측은 김포행 하행선인데 TBM은 지난 19일 현재 상행선 뚫고 들어가 190m가량을 남기고 있다. [사진 황우주]
황우주(사진) 한국도로공사 김포파주건설사업단 팀장은 “터널 공사비만 4958억원으로 한강 밑 34.5m까지 뚫는다”며 “2027년 12월 완공되면 김포~파주 통행 시간이 59분에서 15분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게보다 길이 좋다, 째깍째깍 시계가 살아나니 나도 살더라"
정재섭 명품 시계 수리 전문가는 서울과 경기도 8곳에서 '길 가게'를 차리고 손님을 맞이한다. 김홍준 기자
시계 수리 49년 외길=파주에서 GTX-A를 타고 다시 서울로. GTX-A는 현재 5개 역만 개통했다. 파주 운정역에서 서울역까진 단 20분. 기존 시간을 절반 이상 줄였다. ‘시간을 고치는 남자’가 그 중간, 연신내역 근처에 있다. 정재섭(67·사진)씨는 명품 시계 수리 전문가. 49년째 외길이다. 그런데 그의 가게는 길 위 작은 승용차다.



Q : 왜 가게를 차리지 않습니까.
A : “길이 가게입니다. 상암동·서대문 등 이곳저곳 8곳에 제 ‘길 가게’가 있어요. 사실 가게를 차렸어요. 19세에 일을 시작했죠. 죽었던 시계가 째깍째깍 다시 숨 쉴 때의 느낌. ‘아, 내가 시계 의사구나’ 싶었어요. 가게에 ‘대학병원’ ‘종합병원’이란 타이틀도 걸었고요. 잘 됐어요. 그러다 2010년쯤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다 날렸어요. 거리로 나왔습니다. 주변에서 ‘누가 길에서 수백만원짜리 명품을 맡기겠냐’며 말리더군요. 마포구청 앞에서 소리쳤어요. ‘여러분의 시간을 고치러 왔습니다.’ 다음날 구청 직원들이 죽어 있던 시계를 가져왔어요. 그것들을 되살렸고, 저도 살아났습니다.”


Q : 시계와 시간, 모두 소중하겠군요.
A : “하루도 빠짐없이 8시 출근, 5시 퇴근을 지킵니다. 일요일만 쉽니다. 그 시간에 그 길에 가면 그 사람이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어느 안경점 사장이 찾아와 같이 일하자고 합디다. 전 길이 좋다고 거절했어요.”


Q : 다양한 사람을 만났겠습니다.
A : “수리비 15만원이라는데 10만원 툭 던지고 도망가는 사람, 짝퉁인데 진품이라 우기는 사람 . 최근에 시계를 맡긴 어느 20대가 음료수도 건네는 거예요. ‘왜 주냐’고 물었더니 ‘어른에게는 잘해야 한다고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감동했어요. 이렇게 길에서 제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도 있어요.”


Q : 시계에 경제가 보입니까.
A : “경기가 안 좋으면 사람들은 시계를 안 고칩니다. 요즘이 그래요.”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네 명의 손님이 왔다 갔다. “이 일은 차분해야 한다. 욱하면 안 된다. 숨을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정씨가 뭔가에 쫓기듯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되뇌었다.

"한라산 안전 책임진 구조대장 4년, 술 한 모금도 안 마셨다"
오순희 한국여성산악회 회장은 제주산악안전대 구조대장을 4년간 지냈다. [사진 오순희]
그녀의 하늘길과 산길=길은 산길로 이어진다. 연신내역은 수도권광역전철 3개 노선이 만난다. GTX-A와 지하철 3·6호선이다. 연신내역 바로 옆인 6호선 독바위역은 북한산 자락에 있다. 북한산은 한 해 700만 명이 찾는 가장 인기 있는 국립공원이다. ‘가장 높은 길(등산로)’이 있는 한라산(1950m)을 끼고 사는 오순희(55·사진) 한국여성산악회장은 ‘업무차’ 북한산을 자주 찾는다. 그는 제주산악안전대 구조대장을 지냈다. 오 회장은 “산에서 ‘대장’이란 타이틀은 남성의 전유물처럼 돼 있는데, 여성으로서 많은 걸 느꼈다”고 했다.


Q :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요.
A : “구조대장을 2019년부터 4년간 했어요. 선거로 뽑았죠. 상대가 남자라 걱정했거든요. 산악회는 남자가 대장을 맡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입니다. 20세부터 구조대 생활을 한 게 도움이 된 듯합니다. 열심히, 선후배를 잘 아우른다는 평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어요. 리더는 위기에서 결정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조대장일 때는 술을 한 모금도 안 마셨어요.”


Q : 이어 한국여성산악회를 맡았고요.
A : “여성산악회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일종의 세대교체입니다. 제주에 있는 나에게까지 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당시 구조대장이라 큰 책임을 두 개 맡을 수 없었어요. 구조대장을 내려놓고 서울 북한산에 매달 세 번 정도는 가요. ‘하늘길’로요(웃음).”

그는 “산악계도 여성의 역할과 인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변했다”고 했다. “원정 가면 밥하고 빨래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지금도 바뀌고 있습니다. 산에 다니는 여성이 많아졌어요. 어느 선배가 여성산악회의 ‘여성’이란 표현을 왜 쓰냐고 하더라고요. 말 자체보다 남성만큼, 아니 남성보다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의지라고 했습니다. 내년 백두대간을 함께 가려는 20대 여성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A4 용지 5장으로 기획을 짜오더라고요. 나름의 ‘길’이 그들에게 있었던 거죠.”


Q : 길은 무슨 의미일까요.
A : “자그마한 여유죠. 과속과 과욕은 금물입니다. 구조대장을 박수받을 때 떠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새 길도 찾고요.”

지난 23일의 함양울산고속도로 거창 분기점 공사 현장. 차가 다니고 있는 도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다. 송봉근 객원기자
동서 잇는 새로운 길=동서를 잇는 새 길이 들어선다. 일명 88고속도로인 광주대구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 사이는 평균 70㎞. 이 사이로 새 고속도로가 내년 12월 완전 개통된다. 6조원가량 투입한 144.6㎞ 함양울산고속도로(고속도 제14호선)다.

4개 공사 구간 중 1구간인 함양과 합천 사이에 거창 분기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광주대구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교각이 세워지고 거더(지지대)와 상판이 얹혀졌다. 양쪽 산에는 발파 후 지반과 암반을 보강하는 NATM 공법으로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 공사는 터널이 절반이 넘는다. 교량도 20%가량이다. 시멘트를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현장 레미콘 생산시설도 만들어 놨다.

최성훈 한국도로공사 함양합천건설사업단 차장이 함양울산고속도로 거창분기점 공사 현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송봉근 객원기자
최성훈(사진) 한국도로공사 함양합천건설사업단 차장은 “함양~울산 이동 시간이 2시간15분에서 1시간30분으로 단축되고, 지역 관광 활성화 등으로 낙후된 경남 북부 지역이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심재철 차장은 “2004년 사업계획을 수립해 22년 걸린 우여곡절 많은 길”이라며 “완공된 뒤 가족들과 지나가게 되면 아빠가 저런 곳을 만들었다며 자랑스러워할 것 같다”며 웃었다.

"동대문구청 상대 소송, 2심서도 승소…화장실부터 짓고 싶다"
'밥퍼' 최일도 목사가 지난 19일 동대문구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 2심에서 승소한 뒤 미소 짓고 있다. 김홍준 기자
끝나지 않는 나눔의 길=함양울산고속도로 기점인 울산에 오는 30일부터 중앙선 KTX 정차역이 추가되고 운행 횟수도 늘어난다. 중앙선의 기점은 청량리역이다. 지난 19일 이른 아침. 청량리역 인근의 노숙인과 어르신 120여 명은 무료급식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환호했다. ‘밥퍼’ 대표인 최일도(사진) 목사가 웃음으로 이들을 맞이했다. ‘밥퍼’는 전날 동대문구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Q : 어떤 소송인가요.
A : “여기는 서울시가 시유지에 지어준 가건물입니다. 2021년 증축 공사를 했는데, 서울시가 고발했습니다. 당시 동대문구청장과 합의를 했는데도요. 다행히 오세훈 서울시장과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새 동대문구청장이 2022년 무허가 건물 시정명령과 함께 건축이행강제금 2억8300만원을 부과했어요. 재단 측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요.”


Q : 이곳이 무허가 건물인가요.
A : “아닙니다. 건축 가건물인데 이게 건축물대장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법규상 건축물대장에 올라가지 않으면 증축이 안 되기에 서울시가 기부채납 등록 때 ‘신축’이라고 표기했고, 동대문구청이 이걸 문제 삼은 겁니다. 서울시장과 전임 동대문구청장과의 합의도 구두로만 해서 ‘증거’가 없었고요.”


Q : 그런데도 승소했군요.
A : “1심 때 서울시 보도자료를 찾아낸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증축을 추진할 당시 동대문구가 특별한 신고나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를 반복적으로 표명해 다일복지재단(밥퍼) 측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도 지난 18일 1심 판단이 정당하다며 구청의 항소를 기각했다.


Q : 승소 후 당장 할 일이 있다면요.
A : “화장실을 짓고 싶어요. 노숙자와 어르신들이 국물을 안 먹습니다. 임시 화장실 계단이 높아 위험해서 안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상고하지 않는다면 동대문구청장에게 여기서 밥을 대접하고 싶네요.”

인터뷰하던 날, ‘밥퍼’ 홍보대사인 윤석화씨가 세상을 떠났다. 최 목사는 “좋은 일 뒤에 이런 일도 있네요”라며 씁쓸해했다. 윤씨는 수의 대신 최 목사도 입고 있던 봉사 조끼를 입고 영면에 들기를 원했다고 한다.

청량리역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한국항공대역. "환경관리원이 나의 길"이라는 조영규(27)씨가 길을 쓸고 있었다. 2025년과 2026년을 잇는 길목에서였다.



김홍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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