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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러너도 1년 뛰면 달성?....흔해진 꿈의 기록 '서브3' 뭐길래

중앙일보

2025.12.27 16:00 2025.12.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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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JTBC 서울마라톤대회에서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무리 지어 달리고 있다. 중앙DB
경남 거제시에서 조선 엔지니어로 일하는 임정현(39) 씨는 요즘 매일 20㎞를 달린다. 산길, 로드, 트랙 가리지 않고 달려 한 달 평균 마일리지(일정 기간 거리의 합) 600㎞를 꾹꾹 채운다. 내년 봄 마라톤대회에서 자신의 풀코스(42.195㎞) 기록인 2시간 37분을 넘어서기 위해서다. 그는 "내년 2월 대구마라톤에서 2시간 35분 이내 진입, 3월 동아마라톤에서 29분대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임 씨는 10년 전 처음 풀코스에 도전했고, 3년 전 ‘서브3(3시간 이내 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서브3 달성자 중 '독학파'에 속한다. 서브3를 하려면 러닝 클래스에 등록해 집중 훈련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임 씨는 자기만의 훈련법을 개발하고 접목해 3시간 벽을 깼다. 비법을 묻는 말에 그는 "꾸준함과 자기 절제"라고 답했다. 그는 달리기 전 "퇴근 후 소파에 누워 치맥을 즐기던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했다. 지금은 치맥을 물론 술을 완전히 끊었다. 대신 매일 집에서 직장까지 10km를 달려 출퇴근한다. 제2의 취미는 주말에 집에서 빵 만들기다.

러닝 인구가 늘어나면서 마라톤 풀코스 서브3 완주자가 넘쳐난다. 서브3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겐 '꿈의 기록'으로 친다. 1㎞를 4분 16초 페이스로 3시간 동안 꾸준히 달려야 한다. 아마추어로서 피나는 노력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그래서 서브3를 완주자는 마라톤 동호회에서 고수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젠 3시간만으론 고수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2시간50분대를 넘어 2시간40분, 2시간30분대를 달리는 아마추어 러너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육상 관계자들에 따르면, 코로나19 전인 5년 전만 하더라도 300명 남짓이던 서브3 러너는 최근 1500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30~40대 젊은 층의 마라톤 유입, 엘리트 선수의 훈련법을 벤치마킹한 트레이닝 프로그램, '카본 플레이트 슈즈' 등 고기능성 장비의 대중화, 러닝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대 등이 이유로 꼽힌다.

김영옥 기자
실제로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서브3 러너는 급증했다. JTBC 서울마라톤을 주최하는 러너블에 따르면 지난 11월 열린 대회서 3시간 이내에 풀코스를 달린 러너는 671명이다. 지난해(402명)보다 50% 가까이 늘었고, 2년 전(392명)과 비교하면 두배 증가했다. JTBC마라톤과 함께 3대 마라톤으로 치는 동아마라톤(917명)과 춘천마라톤(365명)의 서브3 완주자도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총 인원은 약 200만명(5·10km, 하프, 풀코스 모두 포함)으로 추산된다.

정영기(58) 전국마라톤협회 회장은 "요즘 러닝 붐은 젊은 층이 주도하고 있다. 서브3를 뛰는 러너도 30~40대가 대부분"이라며 "이들이 서로 경쟁하며 좋은 기록을 내고 있다. 소질이 있고 체력이 되는 30~40대 러너는 1년 정도 훈련하면 서브3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김영옥 기자

선수 출신이 운영하는 러닝 클래스도 한몫했다. 정 회장은 "지역마다 엘리트 선수 출신들이 가르치는 러닝 클래스가 자리 잡았다. 마라톤 선수들이 하는 훈련을 아마추어들이 따라 하면서 기량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러닝 클래스의 훈련법이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현장에서 가지 않더라도 따라 배울 수 있게 됐다. 유명 클래스는 보통 100여명, 많은 데는 200~300명의 동호인이 몰린다.

지난 10월 열린 강남국제평화마라톤에서 서브3를 달성한 아마추어 마라토너 박상현(왼쪽) 씨. 오른쪽은 러닝 클래스에서 함께 훈련한 동료들. 사진 박상현
7년 전 마라톤에 입문한 박상현(41) 씨는 그해 첫 대회에서 3시간 53분대를 기록했다. 이때만 해도 기록 달성엔 무관심했지만, 기록이 좋아지면서 서브3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지난 3월, 마침내 서브3를 달성했다. 지난해 4월부터 서울 강남의 한 러닝 클래스에 나가 집중적으로 훈련한 덕분이다. 인터벌 트레이닝(Interval Training, 전력 질주 후 천천히 달리기 등을 반복), LSD(Long Slow Distance, 느리게 오래 달리는 지구력 훈련) 등을 꾸준히 소화했다. 박 씨는 "러닝 클래스는 비슷한 기록을 가진 사람들끼리 조로 짜서 훈련하는데 그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여자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의 권은주(48) 씨는 "동호회 내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실력이 는다. 또 아마추어는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달리니까, 오히려 기록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30~40대 직장인이 일에서 성취감을 갖기가 쉽지 않은데, 달리기는 하는 만큼 기록이 좋아진다. 우울한 마음의 치유, 작은 성취감이 젊은 층이 달리기에 빠져드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러닝 장비의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는 러닝화가 된 '카본 플레이트' 신발이 대표적이다. 미드솔(중창)에 기다란 탄소섬유(카본) 소재의 판(플레이트)을 넣은 러닝 슈즈로 반발력과 추진력을 더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충격 흡수를 위한 4㎝의 쿠션폼을 더하면 달리는 사람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준다. 동호인들 사이에선 "3시간 3분을 뛰던 사람이 카본 슈즈를 신으면 서브3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3분을 단축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인 셈이다.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는 한때 아마추어에겐 과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아마추어가 신고 달리면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젠 카본화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리스크보다는 효능이 더 부각되고 있다.

오혁(51) 데상트 DISC 이노베이션 콘셉트팀장은 "(풀코스) 3시간대는 물론 4시간대를 뛰는 러너도 대부분 카본 플레이트 슈즈를 신고 뛴다. 최근엔 종류가 다양해져 초보자를 위한 카본 슈즈도 많아졌다"고 했다. 단, 가격이 20만원대 후반에서 30만원대로 비싸다는 게 흠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러닝화 시장은 약 1조원으로 추산된다.

김영주 기자 [email protected]





김영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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