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엔 공연장 블루스퀘어, 미술관 리움, 국립중앙박물관, 연예기획사 하이브, 50여개의 대사관 등 다양한 문화 자산이 존재해요. 이런 자치구에 문화재단이 없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죠? 앞으로 이런 자산들을 적극 활용해 세계적인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싶어요. 또 1000석 규모의 공연장 신축, 새로운 아트 페어 등도 계획하고 있어요.”
지난 26일 서울 신영동의 팝페라하우스에서 만난 임형주(39) 용산문화재단 이사장은 “용산을 ‘K컬처’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임형주는 지난 18일 용산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서울 자치구가 운영하는 문화재단 이사장 중엔 최연소다.
그는 12세에 첫 음반을 발매한 후 국내외 무대에서 꾸준히 사랑 받은 ‘팝페라 레전드’다. 한국인 음악가 최초 메이저 4대 음반사(소니, EMI, 워너, 유니버설)와 음반 유통 계약,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연(2005), 나루히토 일왕 초청공연(2007),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및 패럴림픽 개막식 공연(2018) 등 굵직한 경력을 쌓아왔다. 지난해엔 문화예술 교육, 기부 활동을 꾸준히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동백장)도 받았다.
이 같은 ‘음악인 임형주’의 커리어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문화재단 이사장이란 직함은 다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임형주는 “누군가 ‘예술가의 사회 활동이 필요한가’라고 물으면 항상 ‘그렇다’고 답해왔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2017년 중앙선관위 자문위원, 2019년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국회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 정책 관련 세미나나 토론회에 참석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임형주는 “고향인 용산구에 대해서도 항상 기여할 일이 없는지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제가 신용산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부모님도 용산구 한남동에 오랫동안 사셨어요. 서울시 자치구 25곳 중 문화재단이 없는 3곳 중 하나가 용산구인데 10여 년 전부터 설립 얘기가 꾸준히 오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사장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떨어져도 좋다는 심정으로 지원서를 넣었죠. 저 같은 예술인들이 입법, 행정부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국내 활동을 수년간 중단하기도 했다. “엠넷의 동요 서바이벌 프로그램 ‘위키드(2016)’의 심사위원 직을 결승 생방송 하루 전에 그만둬야 했어요. 이후 또 다른 공연 무대에서도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부르기로 했다가 돌연 취소됐고요.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더군요. 아마도 세월호 참사 추모곡으로 이 노래가 많이 불렸기 때문이겠죠.”
임형주는 2017년부터 미국 그래미 어워즈 심사위원 겸 투표인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미는 심사위원 1만2000여명의 투표로 후보작·수상작을 선정하는데, 투표인단 중 한국인은 극소수다.
올해는 그래미 어워즈 본상인 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에 한국인 뮤지션의 곡이 다수 후보로 진출해 있다.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부문 등에 블랙핑크의 로제·브루노 마스가 협업한 ‘아파트’, ‘케이팝데몬헌터스’의 OST ‘골든’이 올라 갔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도 뮤지컬 앨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있다. “올해 본상에서도 세 곡 중 한 곡은 반드시 수상할 거라고 봐요. 만약 이 중 1곡 이하만 수상한다면 ‘여전히 보수적인 그래미’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한편으론 음악인으로서의 목표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내년엔 21번째 독집 음반을, 데뷔 30주년인 2028년엔 생애 최초로 베스트 앨범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밴드와 하는 큰 공연은 많이 해봤으니 30주년엔 특별하게 피아노 단 한 대와 함께 하는 ‘살롱콘서트’로 무대에 서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아주 작은 소도시까지, 서른 곳의 공연장을 돌며 최대한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게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