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호 석유화학 사업재편안’을 제출한 롯데케미칼이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과 동시에 본격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섰다. 기존의 범용 석화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롯데케미칼은 28일 “국내 석유화학(석화) 산업 구조전환 국면에서 NCC 통합 재편과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26일 충청남도 대산 산업단지에서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고 NCC 생산 설비를 줄이는 내용의 업계 첫 사업재편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내년 1월 중 정부 승인이 확정되면 세제혜택 등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구조조정을 계기로 고부가·친환경 사업 중심으로 체질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 속에서 기존 범용 석화 사업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우선 내년 하반기부터 전라남도 율촌에서 연간 총 50만t 규모의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공장을 가동한다. 국내 최대 단일 컴파운드(혼합물) 생산공장으로, 모빌리티·정보기술(IT) 등 주요 핵심 산업 맞춤형 고기능성 소재를 생산한다. 일부 라인은 지난 10월부터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향후 기술력 기반의 고부가 ‘수퍼 엔지니어링플라스틱(Super EP)’ 제품군까지 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를 확충할 예정이다.
배터리 소재사업도 확장한다. 현재 자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고품질 동박과 차세대 배터리 소재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인공지능(AI)·반도체 분야에 핵심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미래 수요에 맞춰 AI용 고부가 회로박(회로기판을 만드는 동박) 공급을 늘려 글로벌 시장 수요 변화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울산에선 지난 6월부터 20메가와트(MW) 규모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상업운전을 시작했고, 내년까지 발전소 총 4기를 운영해 누적 80MW 규모의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또 대산에선 지난달부터 국내 최대 규모 고압 수소출하센터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 회사인 LUSR를 청산하는 등 지난해부터 국내외 비핵심 사업 정리를 통해 약 1조7000억원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했다”며 “수익성 제고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 활동을 지속해 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스페셜티 전환은 이미 일본이 거쳐갔던 생존전략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일본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조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총 세 차례의 구조조정을 통해 석화 사업 체질전환에 성공했다. 특히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에 따라 6년 내 에틸렌 30%를 감축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고, 프라임폴리머·미쓰비시케미컬·스미토모화학 등 대형 석화사들을 중심으로 헬스케어·스페셜티·ICT(정보통신기술) 등 미래 성장 사업 투자를 확대했다.
한국에서도 스페셜티 전환 속도는 빨라질 전망이다. 최근 LG화학도 기존 3대 성장동력(전지소재·글로벌신약·지속가능성)에 ‘석화 고부가 전환’을 추가해 4대 성장동력으로 재편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당장에 이익이 되는 범용 제품에 집중하다 보니 연구개발(R&D) 투자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업계 스스로도 노력해야 하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뒷받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