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즌을 보내는 프로스포츠팀들이 맞서 싸워야 할 ‘적’은 상대 팀만이 아니다. 불현듯 찾아오는 무서운 ‘적’이 있다. 바로 선수 부상이다. 특히 키 플레이어의 부상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프로배구 대한항공이 부상 악재 속에서도 2025년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다만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에 이어 ‘플랜B’의 주인공인 임재영마저 경기 도중 무릎 부상으로 쓰러져 ‘플랜C’까지 꺼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대한항공이 2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5~26 진에어 V리그 남자부 3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홈팀 우리카드를 세트스코어 3-1(25-21, 25-22, 23-25, 25-22)로 물리쳤다. 직전 경기였던 지난 25일 KB손해보험전에서 패한 대한항공은 이날 승리로 일단 한숨은 돌렸다. 승점 40(14승3패) 고지에 올라선 대한항공은 2위 현대캐피탈(승점 32, 10승7패)에 격차를 ‘8’로 벌렸다.
선두 대한항공은 최근 부상이라는 적과 일전을 벌이고 있다. 팀 공격과 수비의 핵인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이 최근 훈련 도중 오른쪽 발목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치료에만 8주가량 걸릴 전망이다. 25일 KB손해보험전에서 허리 근육 이상을 보였던 외국인 선수 러셀이 정상적으로 경기를 뛸 수 있었던 점은 다행이었다. 경기 전 “정지석의 빈자리는 수비보다 공격에서 더 크다”고 말한 대한항공 헤난 감독은 수비는 좀 미흡해도 공격이 돋보이는 임재영은 정지석 자리에 투입했다.
임재영은 기대에 부응하듯 가공할 공격력을 선보였다. 첫 세트 80%의 공격 성공률 속에 4득점 한 임재영은 2세트에는 6득점의 러셀보다 많은 7득점으로 공격에 앞장섰다. 2세트 공격 성공률도 77.87%에 달했다. 우리카드는 수비가 다소 미흡한 임재영을 겨냥해 목적타 서브로 공략했지만, 공격으로 신이 난 임재영은 수비에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1세트 37.5%였던 리시브 효율이 2세트에는 41.67%까지 올랐다. 수비가 좋은 또 다른 아웃사이드 히터 정한용(40%)은 물론 아시아 쿼터인 리베로 료헤이(28.57%)보다도 높았다.
정지석 공백을 지워버린 임재영의 활약으로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선 대한항공이 부상이라는 ‘적’과 다시 만난 건 3세트 초반이었다. 5-6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임재영이 왼쪽 무릎을 다친 것. 생각보다 큰 부상에 임재영은 들것에 실려 나간 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임재영이 빠지면서 대한항공은 흔들렸고 결국 3세트를 우리카드에 뺏겼다. 김선호가 대신 들어간 대한항공은 김규민 등 미들블로커의 속공 비중과 러셀의 공격 빈도를 높여 분위기를 되돌렸다. 세터 한선수는 특유의 노련함으로 잇단 부상으로 위기를 맞은 대한항공을 이끌었다.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 악재 속에 전반기 일정을 마친 헤난 감독은 “(전반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위(현대캐피탈)와 승점 차가 8이다. 우리 선수들이 잘 버텼고, 지속적으로 끈끈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칭찬하며 “(후반기에는) 두 가지 걱정이 있다. 첫 번째가 정지석과 임재영의 회복이다. 두 번째가 새해에 찾아올 4라운드를 잘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