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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연주할지, 공연 당일 알려준다

중앙일보

2025.12.28 07:01 2025.12.2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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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지난 6월 뉴욕필과 내한 협연에 이어 다음 달 한국 독주회를 연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중 하나이자, 까다롭기로 유명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9)이 신선한 공연을 선보인다. 화두는 ‘프렐류드(전주곡)’다.

그는 이번에 연주될 프로그램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각기 조성이 다른 크고 작은 프렐류드들을 그 날의 분위기에 맞춰 자유롭게 구성해 내보인다.

다음 달 한국 공연에 앞서 일본에서 연주된 곡들을 보면 프렐류드 하면 떠오르는 작곡가들인 바흐, 쇼팽, 드뷔시, 스크리아빈 외에도 로만 스타트코우스키, 그라지나 바세비츠 등 폴란드 음악가의 이름이 눈에 띈다.

지난 6월 한국에서 공연했던 지메르만에게 폴란드인으로서 자국의 작곡가들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바세비치, 루토스와프스키, 시마노프스키 등을 제가 연주하는 이유는 그들이 폴란드인이라서가 아니라 작품들이 월등히 뛰어나서이고, 어느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고유한 의도나 해석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이들의 걸작들은 많이 다루고 있지만 연주자들이 모두 비슷하고 서로를 모방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당시 어렵게 마련된 인터뷰에서 첫 질문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잘 모르는,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전의 지메르만’ 에 대한 질문부터 했다.

“1973년 6월, 체코 흐라데츠라는 작은 지역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빈·코펜하겐 등에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런던 프롬스에서도 연주할 기회가 있었지만 쇼팽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해 포기해야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변의 전문가들이 ‘넌 베토벤 연주자인데 왜 쇼팽 콩쿠르에 나가려 하느냐’ 며 말렸다는 거죠.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음악가에게 붙여놓고 바꾸려 하지 않아요.”

어떤 것에도 속박받지 않고 음악이라는 우주 속에서 작곡가와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려는 지메르만의 의지가 대화 내내 분명히 드러났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뉴욕 필과의 협연은 30여 년 만에 이 교향악단과 연주한 베토벤의 협주곡 4번이어서 그에게 더욱 특별했다.

“흔히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얘기할 때 베토벤이 새롭게 만났던 피아노들에 대해 거론하는데, 사실 어느 피아노 앞에서 작곡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그의 귓병에 대해 주목해야 하죠. 그를 평생 괴롭힌 왜곡돼 들리는 음정과 음향, 그 악조건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려 노력한 베토벤이 만들어 낸 판타지야말로 작품의 핵심입니다.”

지메르만의 예술이 지닌 요체는 결국 작품이 지닌 환상성과 자유로움으로 치환된다. 지메르만은 자신의 피아노를 공수해 다니면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피아노 소리는 어떤 것일까.

“제가 추구하는 피아노의 음색은 ‘이상적’ 인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입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현재 전 세계 공연장과 피아니스트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고 저도 이 피아노를 무척 사랑합니다만, 그들이 강력한 주류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죠.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등이 스타인웨이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번 리사이틀의 주제인 프렐류드는 본래 작품의 본론에 앞서는 서론 같은 역할을 하는 작품들이다.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정갈하게 만들어진 작품의 ‘포장’을 정성스럽게 여는 지메르만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듯하다. 한국 공연은 다음 달 13·15·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김주영 피아니스트·서울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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