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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인의 중국 과학기술 굴기] 벼락 같았던 2025년 중국 과학기술 굴기

중앙일보

2025.12.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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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인 한양대 교수
올해 1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딥시크 쇼크의 주역 량원펑은 네이처가 선정한 2025년 10대 화제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8월,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올림픽에서 4관왕을 차지한 유니트리 G1은 중국의 인기가수 왕리홍의 12월 연말 콘서트에서 한층 더 매끄럽고 유려한 춤솜씨를 보이며 한 해를 마무리 지었다. 2025년 중국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선사한 것은 AI와 로봇 외에 또 있다. 중국과학원 심해과학연구소의 두멍란(杜夢然) 박사는 북서 태평양 해저 9000m에서 세계 최초의 심해 생명 생태계를 발견했다. 상하이인공지능연구소는 자체개발한 과학 연구 에이전트 ‘서생(书生)’과 멀티모달 대모형 시리즈를 공개했다. 이같은 여러 성과에 힘입어 중국은 2025년 글로벌혁신지수(GII)에서 처음으로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중국, AI 외에도 다양한 발전
글로벌혁신지수 톱10 진입
성공 이면에 고민·난제 많아
우리도 혁신 내실있게 추진해야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의 창업자 겸 회장인 허샤오펑이 지난달 5일 광저우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언을 공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올해 필자가 책상 앞에서, 또 중국 전역을 누비며 관찰하고 공유한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는 현재 모든 영역에서 진행 중인 중국식 과학기술 혁신이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필자가 전하려고 했던 것은 단순히 각 분야에서 중국의 대학·연구소·기업·연구자가 보여주는 경이로운 성과 외에도, 이런 과학기술혁신이 가능했던 생태계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고민이었다. 올 한 해 우리가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를 지켜보면서 주목해야 했을 부분들은 무엇이었을까.

촘촘하고 유연한 중국 혁신 생태계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은 부분들은 정량적인 투입 산출 지표 이면에 있는 동태적인 동인들이다. 분야별로 중국의 기술굴기를 소개할 때 많은 독자는 중앙 정부의 예산이 몇 천억 투입되었고, 엔지니어는 몇 만명이고, 특허는 몇 천개인지에 집중했다. 이러한 지표들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 맞춰 민첩하게 진화하고 있는 중국 혁신 생태계이다. 스마트폰에서 전기차를 거쳐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이어지는 빠른 전환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답은 그들이 구축한 촘촘하고 유연한 생태계에 있었다. 또한, 혁신 주체간의 치열한 경쟁의 이면에 있는 대학내 유사 학과 간의 경쟁, 지역별 혁신 주체들 중심으로 구성된 지-산-학 혁신 생태계 간의 경쟁과 협력, 그리고 생존을 위해 중국의 후발주자들이 채택하는 기상천외한 혁신 경로 등이 우리가 깊이 들여다봐야 할 중국식 혁신의 본질이었다.

둘째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들이 성공의 이면에 있는 고민과 비용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그들의 빠르고 경이로운 과학기술 혁신의 뒤에는 많은 대가와 해결 과제가 수반된다. 우리가 열광한 중국의 원사 제도는 특정 개인의 과도한 권한과 자격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한 중국 학계의 과도한 경쟁과 이로 인한 부작용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필자가 언급한 적이 있는 베이징 대학의 라오이(饶毅) 교수는 본인의 위챗 계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일부 자격 없는 원사에 대한 철저한 해부와 비판을 제기하고, 과도하게 경쟁적인 평가제도가 신진 학자의 성장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원로 석학의 용감하고 건설적인 비판은 중국 과학계에 널리 퍼지고 있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기술전략의 꾸준함이 중요
마지막으로, 과하게 이벤트 중심적인 전달과 자기 확신적 해석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그들의 성공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확산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에 대한 건설적인 다양성과 깊이의 확보에는 여전히 실패했다. 올 한 해 중국의 기술굴기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어떤 기업이 어떤 신제품을 출시했는지에 집중되거나 철 지난 레토릭에 기반한 해석이 주를 이루었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는 여전히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그들도 아직 숱한 기술·산업·사회의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중국 과학기술 굴기 성공의 발판은 마오쩌둥의 양탄일성(兩彈一星·두 개의 폭탄(원자탄, 수소탄)과 하나의 별(인공위성)),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장쩌민의 과교흥국(科敎興國·과학과 교육으로 나라를 부흥시킨다), 후진타오의 중장기 과학기술 전략, 시진핑의 중국제조 2025와 과학기술 자립자강의 전략 누적과 동시에 미·중 전략경쟁과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환경 변화와 상호작용하며 진화한 산물이다. 그 어느 하나의 요소가 지배적인 설명력을 갖지 않는다.

앞서 제기한 여러 비판에서 필자 역시 자유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가 본 칼럼을 시작한 것은 중국의 과학기술굴기를 칭송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동안 무분별하게 유통되던 중국의 기술굴기와 관련된 불량지식으로부터 우리의 지식 생태계를 정화하는 것이 1차 목표였고, 그 과정에서 섣부르게 또는 의도적으로 중국의 성공 방정식을 오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 2차 목표였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올 한 해 지근거리에서 감지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을 한국에 전달함으로써 우리 기업·대학·연구자·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2026년 병오년부터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객관적으로 살펴봄과 동시에, 그 이면에 있는 본질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대응 방법론을 고민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혁신의 걸림돌은 경쟁자의 선방보다 우리 스스로의 실책이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과학기술 전략의 근간은 낙담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우리만의 과학기술 혁신을 내실 있게 추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필자의 노력이 아주 작게나마 이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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