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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집값, 지방선거 최대 복병 [장세정의 시시각각]

중앙일보

2025.12.2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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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매매·전세·월세 등 집값이 동시다발적으로 치솟고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부가 연내에 추가 대책을 발표할 것처럼 예고하더니 슬그머니 해를 넘기고 있다. 질병 치료든 정책이든 골든타임이 있는데 또 실기할까 걱정스럽다. 이재명 정부 들어 6·27(금융), 9·7(공급), 10·15(종합 규제) 등 벌써 세 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대책이 부실하니 시장에서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 최소 26차례 대책을 쏟아내고도 시장에 완패한 문재인 정부의 뼈아픈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충남 천안 타운홀 미팅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서울·수도권 집값 때문에 요새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대책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사진 대통령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서울·수도권 집값 때문에 요새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대책이 없다. 있는 지혜와 없는 지혜를 다 짜내고 모든 정책 역량을 동원해도 구조적인 요인이라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정 책임자로서 답답함을 솔직하게 토로한 것이겠지만, 집값 안정에 자신만만하던 이 대통령의 "대책이 없다"는 발언은 너무 일찍 시장에 백기를 든 것처럼 여겨져 난감하다.
정부 공급 대책 못 내놓고 해 넘겨
정치적 계산보다 시장 존중해야
표심 변수, 계엄보다 민생 성적표
올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노무현 정부 말기였던 2006년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다. 남북 소득 격차가 29배인데, 남남 부동산 자산 빈부 격차는 무려 130배란 통계도 있다. 물론 고삐 풀린 집값은 이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실정, 박원순 서울시장의 뉴타운 해제와 재개발·재건축 옥죄기 등의 후유증이 누적된 결과다. 시장을 인정한 윤석열 정부도 공급 대책을 냈지만, 집값 상승의 진원지인 서울에 신규 공급이 충분하지 못했다.
부동산은 심리다. 시장은 정책 동향을 살피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민석 총리가 마치 조선시대 영의정이 된 것처럼 종묘(宗廟)에 '출두'해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종묘의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고 했다. 현행법에는 저촉되지 않는 세운 4구역 재개발을 문제 삼았다.
김민석 총리가 지난 11월 10일 서울 종묘를 방문해 서울시의 세운 4구역 재개발을 거론했다. 도심에 택지가 부족한 서울은 고층 재개발이 신규 주택 공급의 돌파구로 주목 받는다. 연합뉴스
서울에는 신규 택지가 거의 없다. 그나마 도심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인 재개발을 가로막는 듯한 김 총리의 언행은 부동산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보냈을까. "당분간 서울 도심에 신규 공급이 어렵겠구나" "공급을 막으면 뛰는 집값은 못 잡겠구나"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은 상식이다.
종묘 시찰에 이어 한강버스에 승선하고, 광화문에 조성 중인 '감사의 정원'을 비판한 김 총리의 의도는 삼척동자도 알 듯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자리를 탈환하려는 여당은 어떻게 해서든 오세훈 서울시장을 깎아내려야 하는 정치적 계산을 하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이 "(일을) 잘하기는 잘하나 보다"라며 정원오 성동구청장을 불쑥 띄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정치적 반대 진영의 서울시장을 때리는 동안 부동산 시장은 정권의 부동산 실패에 베팅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오산이다.
정부는 10·15 대책 당시 토지거래허가제라는 반시장적 정책을 서울 25개 구 전체와 한강 이남의 경기도 기초 지자체 12곳에 남발했다. 하지만 풍선효과로 집값 상승 불길은 토허제 미지정 지자체로 옮겨붙었다. 이미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세금 폭탄을 걱정하고, 정부가 집값을 진정시키길 기다리던 사람들은 배신감을 토해낸다. 부동산 정책 실패가 민심을 요동치게 만든 셈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26일 국회에서 당대표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2차 종합 특검을 예고했다. 3대 특검이 180일 동안 탈탈 털고도 뭐가 남았는지 모르겠다. 내란 혐의 사건 1심 판결이 설 연휴를 전후해 나오면 법적 단죄는 사실상 매듭된다. 그런데도 조기 대선에서 재미를 본 여당은 내년 지방선거도 윤석열·김건희 때리기 카드를 이용해 치를 태세다. 하지만 유권자인 국민은 새 정부가 민생을 제대로 살리고, 집값을 잡는 진짜 유능한 정부인지 따져서 투표할 공산이 크다. 적어도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철 지난 계엄 이슈보다 부동산 등 민생 성적표가 내년 지방선거 표심을 흔들 최대 변수이자 정치적 복병이 될 것이다.



장세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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