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를 전기가 많은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입주할 경우 필요한 전력이 원전 15기, 약 15GW에 달한다는 점을 들며 “기업이 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으로 가고, 불가피한 경우만 송전망을 이용하는 구조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에너지 지산지소(지역 생산·지역 소비)’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반도체 산업의 현실과 국가 전략의 시간표를 충분히 고려한 발상인지 의문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4월 문재인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처음 윤곽을 드러냈다. 이후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3월 국가산업단지로 확정됐다. 정권을 초월해 추진돼 온 국가 핵심전략 사업이다. 여의도에 맞먹는 777만㎡ 규모로, 전력·용수 확보를 위한 발전소와 송전망, 도수관로까지 국가 계획에 반영돼 있고 보상과 행정 절차도 이미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옮길 수 있다”는 주장은 최소 10년을 내다보고 추진되는 반도체 산업의 시간 감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용인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전북 새만금이 과연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할 기반을 갖췄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새만금에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도록 설계된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반도체 생산시설 일부를 이전하자는 주장이 여당에서도 나오고 있으나 재생에너지는 반도체 공장이 요구하는 ‘항상 안정적인 전기’가 아니다.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성을 피할 수 없고, 결국 원전과 LNG 발전, 대규모 송전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장소를 옮긴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인프라를 다시 구축하며 시간과 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최근 민주당 호남발전특위의 광주 반도체 유치 제안도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청년 유출과 지역 침체를 반도체로 해결하겠다는 논리지만, 과거 강원도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으나 현실성 부족으로 진척되지 않았다. 반도체는 전문 인력과 연관 업체가 집적된 클러스터 전략이 핵심이다. 김 장관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와 투자 주체인 기업의 의견을 들어봤는지도 의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전력·용수·공급망이 동시에 맞물려야 돌아간다. 이를 지역 민원이나 정책 철학의 실험 대상으로 삼는 순간 국가 경쟁력은 흔들린다. 미·중이 첨단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일본은 TSMC 구마모토 공장을 초단기간에 완공했고, 중국은 D램 시장에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전 논쟁이 아니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하루라도 빨리 완성하는 일이다. 반도체 전쟁은 속도전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