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부터 합성 니코틴을 사용한 액상형 전자담배도 '담배'로 분류된다. 담배의 정의가 1988년 담배사업법 제정 이후 37년여 만에 처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26일 보건복지부·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이러한 내용의 개정 담배사업법이 2026년 4월 24일 시행된다. 그동안 국내 담배 규제는 '연초의 잎'을 기준으로 설계됐다. 이로 인해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신종 담배는 법적 담배에 해당하지 않아 각종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이번 개정으로 이러한 공백이 메워지게 됐다.
정부는 그간 전자담배 규제 방향을 둘러싼 공론화와 연구를 이어왔다. 2021년부터 매년 금연정책포럼을 열어 학계·시민단체와 논의를 이어왔고, 전자담배 시장과 소비 행태에 대한 실태조사와 모니터링도 진행했다. 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질병관리청 등이 진행한 여러 연구에서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에 발암물질 등 각종 유해 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가장 큰 변화는 건강경고 의무 적용이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에도 담뱃갑 겉면에 경고그림·문구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보건당국은 전자담배 제품 형태를 고려한 건강경고 표시 매뉴얼을 이미 마련해 둔 만큼, 제조·수입업체의 이행 여부를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담배 광고에 대한 경고문구 규제도 강화된다. 소매점 내부 담배 광고나 신문·잡지에 실리는 담배 광고 하단 중앙에는 경고문구를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한다.
담배 정의가 확대되면서 학교·병원·관공서 등 금연구역에서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를 사용할 경우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청소년과 젊은 층을 겨냥한 맛·향 마케팅에도 제동이 걸린다. 개정법 시행 이후에는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에도 가향물질 표시 제한이 적용돼, 과일이나 디저트 향을 강조하는 문구·이미지를 포장이나 광고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광고·판촉 활동 전반도 대폭 제한된다. 지정소매인 영업소 내부 등 일부를 제외하고,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의 온라인 광고, 매장 광고의 외부 노출, 전자담배 박람회나 판촉 행사 후원은 모두 금지된다. 또 온라인 쇼핑몰이나 SNS를 통한 판매는 불가능해진다.
무인 담배자동판매기에 대한 규제도 강화된다.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 자동판매기는 설치 장소가 제한되고 성인 인증 장치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특히 내년 2월부터는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자동판매기 설치·운영이 단계적으로 금지된다.
이번 법 개정의 배경에는 전자담배를 둘러싼 시장 변화가 있다. 국내 청소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2023년 기준 3.1%로, 성인 사용률(4.5%)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청소년과 젊은 세대를 겨냥한 담배회사의 마케팅을 강하게 비판했다. 맛과 향, 세련된 디자인을 앞세워 전자담배를 '덜 해로운 대안'으로 포장하는 이른바 '위해 감축 전략'이 확산하면서 경각심이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이미 합성 니코틴을 담배 규제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은 니코틴이 포함된 모든 제품을 담배로 규정하고 있으며, 캐나다·프랑스·뉴질랜드 등도 전자담배를 담배 규제 체계 안에서 관리한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무(無)니코틴을 표방하는 유사 니코틴 제품, 전자담배 기기와 부품 등은 여전히 규제의 경계에 놓여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담배 시장에 대응하려면 성분이 아닌 기능과 사용 목적 중심의 보다 포괄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혜은 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이번 담배사업법 개정은 기존 연초의 잎뿐 아니라 니코틴도 담배로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라며 "앞으로도 신종담배에 대한 담뱃갑 경고문구 적용, 금연구역 확대, 광고 판촉 규제, 교육 홍보 등 금연정책을 강화하고, 금연서비스 제공 구조를 체계화해 담배로부터 국민 건강을 보호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