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지 약 3년 7개월 만에 다시 '청와대 시대'가 열렸다. 청와대처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도 새 단장에 한창이지만,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사와 전통의 이스트윙(동관) 리모델링을 추진하면서다.
29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는 백악관 이스트윙을 허물고 짓는 연회장 규모를 두고 자신이 고용한 설계자와 최근 몇 주 동안 이견을 빚었다. 트럼프는 연회장을 백악관 본관(약 5400㎡)보다 훨씬 크게 짓길 원하지만, 설계자 제임스 맥크레리 2세가 “증축하는 건물(연회장)이 주(主) 건물(백악관 본관)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건축계 ‘불문율’을 어길 수 있다”며 꺼리고 있어서다.
트럼프가 밀어붙인 이스트윙 증축은 시작부터 논란거리였다. 백악관은 1800년 건립할 때 관저·집무실이 함께 있는 본관 한 채만 있었다. 그러다 1902년 관저를 가운데 두고 양 날개처럼 건물을 넓혀 대통령 집무실과 국정운영 공간은 웨스트윙(업무동)에 두고, 동쪽은 방문객이 출입하는 테라스로 꾸몄다.
테라스가 이스트윙으로 바뀐 건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비상벙커를 만든 뒤 위를 덮기 위해 2층 건물을 올렸다. 아내인 엘리노어 루스벨트 여사가 이스트윙을 자신과 비서의 공간으로 썼다. 이후로 이스트윙은 웨스트윙 못지않게 ‘부드러운’ 정치력을 펼치는 퍼스트레이디의 공간으로 남았다.
123년 역사의 이스트윙을 무너뜨린 건 트럼프였다. 트럼프는 지난 7월 “이스트윙을 건드리지 않고 인근에 9만㎡(2만7225평) 규모 연회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고는 10월 셧다운(연방정부 업무 일시 정지) 기간에 이스트윙을 기습 철거했다. 백악관의 3분의 1 규모가 무너졌다. 주위 수목은 물론 유서 깊은 재클린 케네디 정원도 파헤친 ‘대공사’였다.
전임 대통령도 백악관을 개조·증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 자문·협의를 거친 뒤 백악관 보존위원회의 의견을 듣고 추진했다. WP는 “워싱턴DC에서 중요 건축물 변경은 국립역사보존법(NHPA)과 국가수도계획위원회(NCPC) 심사·승인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하나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7월 NCPC 위원을 교체해 12명 모두 ‘충성파’ 공화당 인사로 채웠다. NCPC는 워싱턴DC 공공건물과 기념물, 대형 개발계획 등을 심의·승인하는 감독기구다. 트럼프가 이스트윙을 기습 철거한 셧다운 기간 NCPC는 문을 닫았고, 위원들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3억 달러에 달하는 건축비도 논란이다. 트럼프는 연회장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0월 백악관에서 블랙스톤·오픈AI·마이크로소프트·팔란티어·록히드마틴·아마존·구글 등 미국 주요 대기업 고위 임원을 초대해 만찬을 갖고 기부를 독려했다. BBC는 “개인·기업이 미 행정부에 다가가기 위한 금전적 대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역사보존협회(NTHP)는 지난 12일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트럼프를 상대로 이스트윙 공사 중단 소송을 냈다. NTHP는 소장에서 “법적으로 어떤 대통령도 아무런 심의도 없이 백악관 일부를 허물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트럼프도, 조 바이든도, 그 누구라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미 행정부는 15일 법원에 낸 답변서에서 “대통령과 고위 인사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보안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추가 공사가 필요하다”며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