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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본질

중앙일보

2025.12.29 07:01 2025.12.2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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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회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오래전 카이스트에서 필자의 학과와 기계공학과는 같은 건물을 이용했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서 유독 부산 사투리가 많이 들려, “이 동네에는 왜 이리 부산 사람이 많아”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카이스트는 서울에 있었다. 석사과정 입학과 동시에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졌고, 등록금 면제, 기숙사 제공 등 파격적 지원이 있었다. 전국 각 대학에서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기계공학과나 전자공학과·화공과 등은 부산대나 경북대·전남대가 웬만한 서울 명문대보다 더 많은 수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 인재들이 대한민국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지방 대학들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른바 지방대의 ‘빅 3’라고 불리는 곳도 옛날과 같지 않다. 기업 없이 지방이 지속 가능할 수 없고, 우수한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이 없이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 과학기술분야에만 특화된 대학도 그 역할이 있지만, 지방 소재 거점국립대학은 기업 지원, 지역 고등교육생태계 유지, 기초학문 보호라는 종합적인 사명을 안고 있다. 따라서 거점대학이 튼튼히 설 때만 지역의 산업을 살리면서 지역균형성장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거점대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산업이 수도권에만 몰려들고 있다. 당연히 정부는 각종 제도를 통해 기업의 지방분산을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지역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지역균형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산업과 대학을 강력히 연계해 최소한 국가 핵심 산업 한두 분야만이라도 시급히 거점국립대가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낮다고 비판하는 소리가 높다. 그러나 발전기금 규모만 봐도 서울대는 하버드대의 약 100분의 1에 불과하다. 하물며 서울대 교육비의 80%만 달라고 애원하는 지방 소재 거점국립대학의 현재 예산을, 그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형편의 지방 사립대학의 교육비를 살펴보면 우리의 허약한 체력이 대학만의 책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성과가 나올 수 있겠는가?

모든 대학, 모든 학과가 동시에 갈 수 없으니, 효율성과 파급효과를 고려해 일단 거점국립대부터 특성화해 보자는 것, 그로 인해 대학 전체의 발전과 지역균형성장을 이뤄보자는 것, 그것이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의 핵심 아이디어다.

다시 카이스트에서 부산 사투리를 크게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나아가 지역균형성장 정책의 성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진회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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